어렸을 적 『수호지』를 읽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인공들의 별호가 참 멋있게 느껴졌던 것 같다. 대충 기억나는 것만 적어도 급시우(及時雨) 송강, 탁탑천왕(倬塔天王) 조개, 입운룡(入雲龍) 공손승, 표자두(豹子頭) 임충, 소선풍(小旋風) 시진, 흑선풍(黑旋風) 이규, 구문룡(九紋龍) 사진, 적발귀(赤髮鬼) 유당, 화화상(花和尙) 노지심, 청면수(靑面獸) 양지 등등. 송강의 별호 급시우는 ‘때 맞춰 내리는 비’라는 뜻이다. 감우(甘雨)나 시우(時雨)가 바로 그런 비다.
맥우(麥雨)는 보리가 익을 무렵 오는 비, 매우(梅雨)는 매실(梅實)이 익을 무렵 내리는 비다. 해마다 유월 상순부터 칠월 상순에 걸쳐 계속되는 장마를 매우라고 하는 것인데, 다른 말로는 매림(梅霖)이나 미우(黴雨)라고 한다. 명개는 홍수로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을 뜻하는 말이다. 건들장마는 초가을에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또 비가 오다가 다시 개고 하는 장마를 가리킨다.
어떤 특정한 날을 전후해 오는 비를 ‘…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복물, 칠석물, 백중물 같은 것이 그렇다. 복물은 복날, 칠석물을 칠석날 내리는 비다. 백중물은 백중날 무렵에 많이 내리는 비를 가리키는데, 백중날은 음력 칠월 보름으로, 지금은 별 볼일 없지만 옛날에는 큰 명절이었다. 절에서는 하안거(夏安居)를 해제하는 날이기도 했다. 불교가 세력을 떨쳤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이날 일반인까지 참석하여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었다고 한다. ‘우란분’은 원래 ‘거꾸로 매달리다’라는 뜻이다. 자손이 끊겨 공양을 받지 못하는 죽은 사람의 영혼은 나쁜 곳에 떨어져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런 영혼을 위해 음식을 바침으로써 고통에 시달리는 영혼을 구한다는 의미의 불사(佛事)가 우란분회였던 것이다.
개부심 (명) 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가 명개를 부시어 냄. 또는 그 비.
쓰임의 예 – 여름 큰 비가 끝나고 개부심마저 지났지만 마치 건들장마인 양 비는 이어지고 희한하게도 그때마다 내 발길은 강을 따라 걸으려고 하니 이 무슨 운명인가. (경향신문에 실린 <한강을 걷다 7 하진부와 강무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명개 – 홍수로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