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27 – 함박눈

튼씩이 2019. 8. 22. 20:18

가늘게 내리는 비를 가랑비라고 하는 것처럼 조금씩 잘게 내리는 눈은 가랑눈이라고 하는데, 가루처럼 내린다고 해서 가루눈이라고도 한다. 함박눈은 함박꽃처럼 눈송이가 크다는 뜻인데, 함박꽃은 함박꽃나무의 꽃이다. 목란으로 불리는 북한의 나라꽃이 바로 함박꽃나무다. 갑자기 많이 내리는 폭설(暴雪)은 소나기눈이라고 한다. 빗방울이 내리다가 갑자기 찬바람을 만나 얼어서 떨어지는 싸라기 같은 눈은 싸라기눈, 줄여서 싸락눈이고, 누리는 싸락눈보다 크고 단단한 덩이로 내리는 눈, 즉 우박(雨雹)을 뜻하는 말이다.


발처럼 줄을 이어 죽죽 내리는 눈은 눈발, 바람에 날려 세차게 몰아치는 눈은 눈보라, 쌓인 눈이 말의 갈기처럼 흩날리는 눈보라는 눈갈기라고 한다. 눈안개는 눈발이 자욱하여 사방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희부옇게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마른눈은 비가 섞이지 않고 내리는 눈이고, 비와 섞여서 오는 눈은 진눈이나 진눈깨비라고 한다.


자국눈은 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적게 내린 눈, 살눈은 살짝 얇게 내린 눈을 가리킨다. 한 자 또는 한 길이 되게 많이 쌓인 눈은 잣눈이나 길눈이라고 한다. 밤에 내리는 눈은 밤눈인데, 밤에 모르는 사이에 내린 눈, 아침에 일어나 아 눈이 왔구나, 탄성을 터뜨리게 되는 눈은 ‘몰래’라는 의미를 강조해 도둑눈이라고 한다. 눈이 와서 쌓인 채 아무도 지나가거나 밟지 않아서 그대로인 눈은 숫눈이라고 하고, 숫눈이 쌓인 길은 숫눈길이라고 하는데, 숫처녀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숫-’은 다른 것이 섞이거나 더렵혀지지 않아서 본디 생긴 대로라는 뜻을 나타내는 앞가지다. 쌓인 눈이 속으로 녹는 것은 움직씨로 ‘석는다’ 또는 ‘눈석임한다’고 한다. 눈석임물은 눈이 녹아서 된 물, 눈석잇길은 눈석임물 때문에 질척질척해진 길을 가리킨다.



함박눈 (명) 굵고 탐스럽게 내리는 눈.


쓰임의 예 – 전날처럼 푸근히 내려 쌓이는 함박눈이 아니라 찬바람을 동반한 눈보라였다. (이문열의 소설 『그해 겨울』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자국눈 – 겨우 발자국이 날 정도로 적게 내리는 눈.



'지난 게시판 > 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9 – 높새바람  (0) 2019.08.26
128 – 눈꽃  (0) 2019.08.23
126 – 개부심  (0) 2019.08.21
125 – 시위  (0) 2019.08.20
124 – 궂은비  (0)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