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199호) 백제 특징이 살아있는 왕흥사터 출토 사리기

튼씩이 2019. 11. 1. 08:25

지난 7월 23일 문화재청은 2007년 부여 왕흥사 목탑 터에서 발견되어 공개된 이후 2012년 보물 제1767호로 지정되었던 “부여 왕흥사터 출토 사리기(舍利器)”를 발견한 지 12년 만에 국보 제327호로 승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사리기(舍利器)’란 부처의 사리를 모셔놓은 그릇을 말하는 것입니다.



 

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터 사리기 일괄” (왼쪽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 국보 제327호 “부여 왕흥사터 사리기 일괄” (왼쪽부터 청동제사리합, 은제사리호, 금제사리병)

 



이번에 국보가 된 부여 왕흥사터 출토 사리기는 바깥부터 청동제 사리합-은제 사리호-금제 사리병 3겹으로 포개진 채 발견되었는데, 가장 바깥 사리기인 청동제 사리합에는 6줄 29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글의 내용으로 577년(정유년丁酉年) 2월 15일 창왕이 죽은 아들을 위해 왕흥사를 세우고 목탑에 사리기를 넣은 것으로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백제 사리기로 확인되었지요.

 

이 사리기는 표면에 새겨진 글씨로 제작연대(정유년丁酉年, 577년)를 명확히 알 수 있음은 물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리기로서 역사성과 희소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아울러 예술적인 면에서도 그 모양과 제작기법의 완성도가 높아 ‘검이불루화이불치(儉異不陋華而不侈)’ 곧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부여 왕흥사터 출토 사리기(청동제사리합)에 새겨진 글씨


▲ 부여 왕흥사터 출토 사리기(청동제사리합)에 새겨진 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