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197호) 거대한 두루마리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튼씩이 2019. 10. 31. 08:25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전체 길이 8.5m에 이르는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가 있습니다. 강산무진도는 18세기 후반~19세기 초 궁중화원으로 이름을 떨친 이인문(李寅文, 1745~1821)이 그린 긴 두루마리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끝없이 이어지는 대자연의 풍광을 묘사한 산수화지요. 하지만, 산수 그대로가 아닌 웅장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세상을 묘사한 관념적인 산수를 그린 것으로, 넓은 들판에서 시작하다가 우뚝 솟아오른 절벽이 보이는 앞부분과 험준한 산세가 중첩되어 광활하게 그려진 중간부, 그리고 다시 잔잔한 들판으로 연결되는 구성을 보여줍니다.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중반부),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중반부), 국립중앙박물관

 



무엇보다 이 그림의 매력은 준법(皴法) 곧 동양화에서, 산악ㆍ암석 따위의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하여 쓰는 모든 기법을 쓴데 있습니다. 곧 산이나 바위를 그릴 때 도끼로 팬 나무의 표면처럼 나타내는 부벽준(斧劈皴), 쌀알 모양의 점을 여러 개 찍어서 그리는 미점준(米點皴)등 다양한 동양화의 준법이 총동원된 그림이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변화무쌍하고 화려한 준법의 구사를 통한 산세의 묘사, 그리고 아주 작고 세밀하게 그려진 인물들의 꼼꼼한 표현이 어우러져 눈길을 옮길 때마다 숨을 쉴 수 없게 할 만큼 극적인 장관을 보여줍니다.

 

또 ‘강산무진도’는 한국회화사에서 보기 드물게 그 크기가 세로가 43.8cm, 가로가 856cm에 달하는 대작 산수화로서 이인문의 높은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념비적인 작품이자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광활한 산수 표현과 정교하고 뛰어난 세부 묘사가 일관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입니다. 한편 특이하게도 이 그림은 추사 김정희(金正喜)가 소장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도장이 찍혀 있습니다.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전체), 국립중앙박물관


▲ 보물 제2029호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전체),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