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불교를 믿지 않으니, 가지고 있은들 어디에 쓰겠느냐? 달라는 대로 주는 것도 괜찮으니, 그것을 의논하여서 하라.” 그러자 노사신(盧思愼)은 말하기를, “‘대장경’은 국가의 긴요한 물건이 아니니, 내려주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이는 성종실록 244권 21년(1490) 9월 24일 치에 나오는 ‘일본에 대장경을 퍼주라.’라는 기록으로 이대로 했었더라면 우리나라에 그 귀한 고려대장경은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은 목판본이 1,516종에 6,815권으로 모두 8만 1,258매이며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과 속장경(續藏經)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린 뒤 1236년(고종 23) 만들기 시작하여 1251년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현존하는 세계의 대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장 완벽한 것으로 오자(誤字)와 탈자(脫字)가 거의 없기로 유명합니다.

▲ 도쿄 ’증상사‘에 있는 고려대장경(왼쪽, 증상사 제공), 한국 해인사 장경각(오른쪽 위)과 고려대장경이 모셔져 있는 도쿄 증상사 안에 있는 경장 모습(오른쪽 아래)
그 팔만대장경은 유교나라이기에 ‘가지고 있어야 쓰일 데가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지만 일본에서 그 가치를 일찌감치 눈치채 끈질기게 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지요. 고려 우왕 14년(1388) 포로 250명을 돌려보내 주면서 처음 달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 효종 때까지 무려 83회나 대장경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때 가져갔던 대장경들은 지금 교토 남선사를 비롯한 도쿄의 증상사 등 일본의 많은 절에 소장돼 있지요. 한때 조선 조정에서는 다 내주었는데도 또 달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종이를 가져오면 찍어주겠다고 했지만, 일본이 가져온 종이는 질이 낮아서 찍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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