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성여자대학교는 여성독립운동가 차미리사 선생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설립한 교육 기관으로 여성의 손으로 만든 자립적, 자생적, 자각적 여성 교육기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여성 인재 육성에 힘써온 덕성여자대학교는 올해 창학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이를 기념하여 덕성여자대학교 창학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쓴 3.1운동이 일어났습니다. 3.1운동의 수많은 의의 중 하나는 이날을 기점으로 여성들의 사회활동과 계몽운동이 활발해졌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억압받던 여성들은 서서히 자아를 찾겠다는 열망과 의식을 키우며 여성 계몽운동에 호응하고 참여했습니다. 구한말, 미국과 중국 유학을 거쳐 여성교육과 사회운동에 앞장섰던 차미리사는 이러한 시대 흐름을 읽고, 1920년 4월 19일에 여성운동가들과 함께 조선여자교육회를 조직했습니다. 이와 함께 가정에서 가사만 도맡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에 주목하여 부인야학강습소를 열었습니다. 기존의 야학을 발전시킨 이 강습소는 3.1운동 이후 등장한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이자 외국인이나 외국 자본의 도움 없이 온전히 우리나라 여성의 힘으로만 세운 여성교육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이 무렵 동아일보에는 '조선여자의 교육!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올시다'로 시작하는 차미리사의 기고문이 실려, 사람다운 값어치 없이 살아온 여성의 역사가 인류의 큰 수치 라는 내용으로 여성교육의 시급성을 알렸습니다. 학생 10명으로 시작된 강습소는 1920년 10월에 160여 명 규모로 커졌고 마침내 1921년에 새로운 학사를 세우고 근화학원(槿花學園)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근화학원은 1925년에 근화여학교로 승격하여 사진, 재봉, 자수 등 실용적인 여성교육을 펼쳤고, 학교 이름도 1935년에 근화여자실업학교로 바꾸었습니다. 1930년대가 되면서 재정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1936년에는 첫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탄압은 피할 수 없었고, 특히 무궁화를 뜻하는 학교 이름에 대한 압력이 거세져 차미리사는 교명을 덕성(德成)으로 바꿨습니다. 광복 이후 여성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을 추진하여 1950년에 덕성여자초급대학을 세웠고, 1987년에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어 덕성여자대학교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차미리사 선생의 창학 이념은 오늘날 덕성여대 학풍의 근간이 되어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강한 비판 의식을 일깨우며 민주적이고 투명한 학생자치활동을 가능하게 합니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는 차미리사교양대학을 포함한 5개 단과대학이 있으며, 39개 전공을 개설하여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덕성여자대학교 창학 100주년 기념우표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대학 도서관과 울창한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올 한 해 새로운 100년을 향한 재도약을 주제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계획 중인 덕성여자대학교. 기념우표를 통해 차미리사 선생의 창학 이념과 생애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이 있는 이야기 > 우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우표 (0) | 2020.06.05 |
---|---|
세계 식물건강의 해 기념우표 (0) | 2020.05.28 |
한국의 옛 건축(궁궐) 기념우표 (0) | 2020.03.26 |
한국의 항공기(두 번째 묶음) (0) | 2020.03.20 |
2019년 우표책 (0) | 2020.0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