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 가운데 줄임 ...)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는 시인 이상의 시 <오감도>입니다. 이 시는 1934년 7월 24일부터 8월 8일까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된 작품이지요. 원래는 30회를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으나 "미친놈의 잠꼬대냐?", "그게 무슨 시란 말인가", "당장 집어치워라", "그 이상이란 자를 죽여야 해!" 등 독자들의 비난 투서가 빗발쳐 연재를 중단했습니다. 13인의 아이들이 달립니다. 그 아이들이 모두 공포에 질려있습니다. 누가 무섭게 아이들을 몰아세웠을까요. 그리고 뭐가 무서워서 그런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한 아이가 겁에 질려 뛰면 무엇 때문인지도 모르면서 다른 아이들도 무작정 그 뒤를 따릅니다.
그런데 여기서 13인의 아이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13년 동안 대학입시를 향해 죽으라고 뛰는 아이들을 예언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앞에서 뛰니깐 무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함께 내달리는 아이들. 그리고 맨 앞에서 뛰는 곧 1등을 하는 아이도 그렇지만 맨 뒤에서 꼴찌로 뛰는 아이 모두 공포에 질려있습니다. 시는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라고 끝맺습니다. 막다른 것이 아니라 뚫어놓고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면 말입니다.
이 작품은 문법을 무시하고, 띄어쓰기와 단락 구분을 무시한 채 쓰인 난해한 시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역설, 아이러니, 숫자나 기호의 도입 등 일상적인 언어규범을 무시한 이러한 창작은 당시 모든 정상적인 값어치가 무너진 식민지 사회에 대한 저항인지도 모릅니다. 또 이상의 대표작 <날개>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란 구절로 유명합니다. 이상은 1937년 일제 경찰에 의해 ’불량선인‘으로 체포되어 한 달여 구금되었다가 건강 악화로 풀려났지만 83년 전인 1937년 오늘(4월 17일) 그 천재작가 이상(李箱, 1910~1937, 본명 김해경-金海卿)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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