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336호) 일본 센다이 도호쿠대학에 김기림 시비가

튼씩이 2020. 5. 11. 08:08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 준 일이 없기에

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일본 도호쿠대학에 세운 김기림 기념비


▲ 일본 도호쿠대학에 세운 김기림 기념비

 


이는 일본 센다이의 도호쿠대학(東北大學) 교정에 세운 김기림 시인의 기념비에 새겨진 ‘바다와 나비’입니다. 시에서 ‘나비’는 시인의 감정이 이입된 존재 곧 당시의 지식인이며, 이 시는 거친 바다의 험난함과 흰나비의 가녀림을 압축적으로 대비한 작품이라고 하지요. 오늘은 김기림 시인이 태어난 날입니다. 일본에는 윤동주를 사랑하는 일본인 모임이 여럿 있지만, 김기림의 시를 좋아하는 일본인들도 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몰랐습니다. 도호쿠대학에 시비를 세운 지 1돌을 맞아 지난해 2019년 11월 30일에는 “김기림에게 배운다. 지금이야말로 센다이에서 일한시민교류를!”이란 행사가 열렸음을 김기림기념회(金起林紀念會) 공동대표인 아오야기 준이치 (靑柳純一) 씨는 전해주었습니다.

 

김기림(1908~?)은 1930년대 한국의 모더니즘 문학을 이끌던 ‘구인회’ 대표로 ‘모더니즘의 기수’라고 불리는 시인입니다. 시인은 납북이 되었는데도 1988년 해금 조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그의 작품은 남한에서 모두 금서로 묶여 그의 이름과 작품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기림의 업적은 우리 시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앞선 시대의 문학을 반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바탕을 마련해 준 것입니다. 또 그는 당시의 비평을 한 차원 끌어올려 작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해부한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했습니다. 김기림의 작품으로 《기상도》, 《태양의 풍속》, 《바다와 나비》 등의 시집과 평론집 《문학개론》, 수필집 《바다와 육체》 등이 있지요.

 



김기림기념회(金起林紀念會) 공동대표인 아오야기 준이치 (靑柳純一) 씨와 김기림 기념비를 만든 사람들


▲ 김기림기념회(金起林紀念會) 공동대표인 아오야기 준이치 (靑柳純一) 씨와 김기림 기념비를 만든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