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年號)”란 임금이 즉위한 해에 붙이던 이름이며, 해의 차례를 나타내려고 붙이는 이름을 말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원년으로 하는 “서기(西紀)”를 쓰고 있지요. 그런데 서기 이전에는 “정삭(正朔)” 곧 중국의 달력을 사용하여 중국의 연호를 같이 썼습니다. 신라는 물론 고려의 대부분과 조선에서도 중국의 연호를 썼는데 자주적인 생각이 강하던 때는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도 했지요.
▲ 단기가 쓰인 4282년(1949) 약력과 서기로 쓰인 1964년 역서
▲ 4287년(1954) 무렵엔 단기와 서기를 함께 썼다.
특히 강성한 나라를 세워 넓은 나라땅을 가졌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즉위한 391년부터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써서 문헌상 우리나라 첫 독자적인 연호로 기록됩니다. 나라를 세워 멸망할 때까지 내내 독자적인 연호를 쓴 것은 오로지 발해뿐이며, 신라는 진흥왕ㆍ진평왕ㆍ선덕여왕ㆍ진덕여왕 때, 고려는 태조 왕건 이후 4대 광종까지만 독자적인 연호를 썼습니다. 조선왕조는 처음부터 명(明)나라의 제후국이라 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쓰지 않다가 1895년부터 고종이 독자적인 연호 “건양(建陽)”과 “광무(光武)”를 썼는데 이마저도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독자적인 연호는 사라지고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제국의 연호를 쓰게 되었지요.
그러다 해방 뒤 1948년 9월 25일부터 단군이 즉위한 해인 서력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단기(檀紀)가 공식적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 때인 1962년 1월 1일부터는 단군 연호가 사라지고 서기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은 세계가 같이 쓴다는 서기를 써야만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일본은 지금껏 서기를 쓰지 않고 독자적인 연호 곧 명치((明治)-대정(大正)-소화(昭和)-평성(平成)-영화(令和)를 달력과 모든 공문서, 심지어 은행 통장에도 씁니다. 이에 견주어 우리나라는 새로 복원한 숭례문 상량문을 올리면서 서기 연호만 썼다는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일본 연하장에 그들의 새 연호 ‘영화(令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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