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나의 학문의 바다 여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나의 나아갈 길을 지도해 주신 스승이 적지 아니하였지마는, 그중에서 나에게 결정적 방향을 지시하였고, 따라 나의 추모의 정한을 가장 많이 자아내는 스승님은 조선 청년이 누구든지 다 잘 아는 근대 조선어학 최대의 공로자인 한힌샘 주시경 씨이다. (가운데 줄임) 오늘날 같으면 조선어 선생도 여기저기서 구할 수 있지마는 그 당시에는 주 선생 한 분뿐이었다.” 위는 잡지 《조광》 1936년 1월호에 실린 외솔 최현배 선생의 "조선어의 은인 주시경 선생"이란 글 일부분입니다.
▲ 주시경 선생(1876~1914)과 선생이 1914년 펴낸 《말의 소리》, 독립기념관 제공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은 106년 전인 1914년 오늘(7월 27일) 세상을 뜨셨습니다. 선생은 국어학자로서 우리말의 정리와 보급에 크게 힘썼지요. 선생의 연구는 말글생활을 바로잡고 교육할 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서 그 필요성은 이미 1897년 《독립신문》에 발표한 논설 〈국문론〉에서부터 강조되어온 것입니다.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겨레의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믿음은 선생이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가르치는 일에 온 평생을 바치게 했습니다.
한힌샘 주시경 선생은 당시 유일하게 한글을 가르친 분으로 “주보따리”란 별명처럼 커다란 책보를 끼고 동분서주했지요. 선생은 언제나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었는데 한복 속에 우리 겨레의 얼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훈민정음을 언문(諺文), 가갸글, 조선글처럼 여러 가지로 부르던 것을 ‘한글’이라고 고쳐 부르게 한 주시경 선생,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사진이 있는 이야기 >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얼레빗 4393호) 문화유산의 큰 수호자 간송 전형필 선생 (0) | 2020.07.29 |
---|---|
(얼레빗 4392호) 왕릉 발굴의 저주와 천마총 금관 (0) | 2020.07.28 |
(얼레빗 4390) 모레는 중복, ‘복달임’으로 더위를 극복하자 (0) | 2020.07.24 |
(얼레빗 4389호) 밤에 방을 밝혔던 조명도구 등잔 (0) | 2020.07.23 |
(얼레빗 4388호) 숲속에 홀로 앉아 발을 씻는 노승 (0) | 2020.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