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지냈다. 왕태자가 함께하였다. 예를 끝내자 의정부 의정(議政府議政) 심순택(沈舜澤)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아뢰기를, ‘고유제(告由祭)를 지냈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하였다. 신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단(壇)에 올라 금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았다. 심순택이 나아가 12장문의 곤룡포를 성상께 입혀드리고 씌워 드렸다. 이어 옥새를 올리니 상이 두세 번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왕후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다.”
▲ 채용신이 그린 것으로 전하는 금빛 곤룡포를 입은 고종황제 어진, 180×104cm, 국립중앙박물관
위는 《고종실록》 고종 34년(1897년) 10월 12일 기록으로 123년 전 오늘 고종 임금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하며 임금은 황제라 부르고, 연호를 “광무(光武)”라 하였음은 물론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고쳐 썼습니다. 또 왕후(王后) 민씨(閔氏)를 황후(皇后)로 책봉하고 왕태자(王太子)를 황태자(皇太子)로 책봉하였지요. 드디어 이날 조선은 중국 변방 나라가 아니라 황제국가로서 선포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후 고종황제는 변방 나라 제후가 입던 붉은빛 곤룡포를 벗고, 황제만 입는 금색 곤룡포를 입습니다. 또 흉배에도 사조룡이 아닌 발톱이 다섯 개의 오조룡(五爪龍)을 써서 황제임을 드러냅니다. 명나라에 이어 청나라를 떠받들던 조선은 이렇게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애를 썼던 고종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0년 뒤인 1907년 일제의 압박에 강제로 퇴위당하고 말았습니다.
▲ 중요민속문화재 제58호 금색 곤룡포와 오조룡보(五爪龍補),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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