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바위를 뚫고 곧게 뻗은 굵직한 소나무와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진 아무런 꾸밈없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하얗게 눈을 맞고 서 있습니다.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조선후기 문인서화가 이인상(1710~1760)의 “눈내린 소나무 그림” 곧 <설송도(雪松圖)>입니다. 이 그림의 소나무들은 사람의 감정이라곤 눈곱만큼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그 자체로 온전한 모습입니다. 더구나 이 소나무들은 예리하게 각이 진 바위들만 있고 흙 한 줌 보이지 않는 비참하리만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뿌리를 땅에 굳게 박고 있지요.
▲ 이인상 “눈 내린 소나무 그림(설송도-雪松圖),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소나무는 물론 이렇게 곧게 뻗은 금강송이 있는가 하면 구부정하지만, 운치가 있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곧은 것도 굽은 것도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인상은 원리원칙을 강조해서 꽉 막혀 보인 사람이었지만 그의 절친한 벗 황경원은 이인상의 무덤 비석에 쓴 글에서 “세상 이치를 말할 때 순리에 어긋나지 않았는데, 그림에는 깊고 그윽함이 있고 곧음을 예술로 승화했다.”라고 말했지요.
이인상은 증조부가 영의정을 지낸 당대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그의 할아버지가 서출이었기 때문에 과거를 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평생 낮은 관직만 지냈을 뿐 뜻을 제대로 펼 수 없었고, 그 대신 서화를 평생의 낙으로 삼으면서 현실을 관조해야만 했지요. 그런 탓에 이 <설송도>도 마치 목탄으로 그려진 듯 건조하고 담담하게 눈을 뒤집어쓴 소나무를 그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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