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가도(冊架圖)’란 책꽂이를 통째로 옮겨 그린 듯한 그림을 말하는데 책을 비롯하여 꽃병과 자명종 시계 등 당시의 여러 귀중품을 함께 그렸으며, 우리말로는 책거리라고도 합니다. 책가도는 당시로써는 서양화에서나 볼 수 있던 ‘투시도법’과 ‘명암법’을 응용해서 그려 조선 전통적 화법으로 그린 그림에 견줘 공간감과 입체감이 훨씬 살아 있습니다. 서민들의 풍속을 즐겨 그린 김홍도(金弘道)가 책가도를 잘 그렸다고 하며, 이윤민(李潤民)ㆍ이형록(李亨祿) 부자(父子) 같은 화원도 책가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 이형록, <책가도>,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153×352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때는 책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책에 관한 관심도 높았는데, 이 책가도는 당시의 선비들이 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책 읽기를 즐겼던 정조임금은 어좌 뒤에 꼭 있는 일월오봉도 대신 책가도를 배치하였다고 하며 “책을 즐겨 읽지만 일이 많아 책을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책가도를 보며 마음을 푼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형록의 <책가도>에는 재미난 것이 있지요. 대부분 궁중회화와 민화에는 화가의 낙관이 없어 누가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데 이 그림에는 도장함과 여러 개의 도장을 그리면서 도장 하나는 찍히는 면인 인면(印面)이 보이게 그렸습니다. 이를 숨겨진 도장, 곧 “은인(隱印)”이라고 하는데 도장을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굳이 눕혀서 그릴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 화원 이형록은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 싶었을까?
▲ 제9폭 도장 부분, 도장 인면을 보이게 그려 화원 이름을 알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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