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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

튼씩이 2021. 2. 24. 07:47

 

 

 

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선조들의 지혜와 풍속을 담고 있는 소중한 유산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을 거치며 많은 문화재가 외국으로 반출되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는 국외 문화재 환수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를 높이기 위해 문화재청과 협력하여 환수문화재를 주제로 한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발행합니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현재(2021년 3월) 전 세계 21개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문화재가 총 19만 3천여 점에 달한다고 합니다. 약탈된 문화재를 돌려받기 위해 정부와 민간단체가 노력하고 있지만, 국보급 문화재 환수는 국가 간 합의가 뒤따라야 하는 어려운 과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되찾은 문화재들도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합니다.

 

1907년에 일본의 궁내대신이었던 다나카 미스야키가 무단 반출한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 86호)’은 미국인 호버 헐버트와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의 노력으로 환수되었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석탑을 약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헐버트는 일본의 영자신문에 이를 폭로했으며, 당시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도 적극적으로 도운 덕분에 1918년 경천사지 십층석탑이 우리 땅에 돌아온 것입니다. 고려 후기를 대표하는 이 석탑은 높이 13.5m의 웅장한 규모와 탑 전면의 섬세한 조각 기술이 돋보이는 수작으로 평가됩니다. 격동의 한국 역사 속에서도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호하는 데에 앞장섰던 간송 전형필(1906~1962)은 사비를 들여 한국 최초의 근대 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했고, 수십 년간 일본에 거주했던 영국 출신 변호사 존 개스비에게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했습니다. 그중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270호)은 청자 연적 중 보기 드문 원숭이 모양으로, 특히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는 형상은 유일하여 예술적 수준과 가치가 더욱 뛰어나다는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진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목조 건물의 기왓장으로 쓰인 수막새 중 유일하게 손으로 빚은 것이며, 당대의 우수한 기와 건축 기술이 집약된 문화재입니다. 1934년에 일본인 의사 다나카 도시노부가 골동상에서 100원을 주고 구입한 이 기와를 되찾아 온 사람은 훗날 국립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의 관장이 된 박일훈입니다. 박일훈은 자신의 스승이자 경주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오사카 긴타로를 통해 일본인 소장자 다나카에게 수막새 반환을 간곡히 요청했고 긴 설득 끝에 1972년 10월, 다나카가 직접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아와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를 기증했습니다. 각종 국가 의례에 사용되며 왕실의 존엄을 상징하는 인장이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대량 유출되었던 ‘어보(御寶)’. 그중에서도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는 <명성황후 옥보>의 귀환을 도운 건 조창수 여사(1925~2009)입니다. 미국 스미소니언자연사박물관에서 44년간 아시아 담당 학예관으로 근무했던 조창수 여사는 6·25 전쟁 참전용사였던 미국인 소장가가 경매에 내놓은 유물 93점을 모금행사에서 구입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국민이 늘어날수록 국외 문화재 환수의 길은 더욱 활짝 열릴 것입니다. 다시 찾은 소중한 문화유산 기념우표를 보며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의 가치와 환수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