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을 쪼개지 않고 꼭지 부분을 따내거나 꼭지 옆에 주먹만 한 구멍을 내고 속을 파낸 다음 거기에 씨앗을 갈무리해 두는 그릇이 ‘뒤웅박’입니다. 뒤웅박은 두베, 됨박, 두벵주름박, 뒝박, 두뱅이주룸박, 두룸박 같은 말로도 부릅니다. 경북 상주지방에서는 오짓물로 구운 것을 쓰며, 박이 나지 않는 데서는 짚으로 호리병처럼 엮어서 쓰기도 하지요. 또 함경도 지방에서는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속이 빈 작대기를 꿰어 씨를 뿌릴 때 썼습니다. 뒤웅박의 모양은 보통 바가지처럼 둥글지만, 호리병처럼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박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 씨앗을 갈무리해두는 뒤웅박
뒤웅박은 씨앗을 갈무리하는 데만 쓰지 않고, 도시락처럼 쓰기도 하는데 습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여름철에 밥을 담아두면 잘 쉬지 않습니다. 그 밖에 달걀 따위도 넣어두며, 가을에 메뚜기를 잡아 담는 통으로도 썼습니다. 흔히 처마 밑이나 보꾹(지붕의 안쪽) 밑 또는 방문 밖에 매달아둡니다. 뒤웅박은 보통 씨앗 5∼10리터를 담을 수 있지요.
‘뒤웅박’이 들어간 속담을 보면 “뒤웅박 신고 얼음판에 선 것 같다”가 있는데 이는 몹시 위태로워서 불안하고 조심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또 “여편네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뒤웅박의 끈이 떨어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듯이, 여자의 운명은 남편에게 매인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뜻의 가부장적인 생각의 말입니다. 그밖에 “끈 떨어진 뒤웅박[갓/둥우리/망석중이]”도 있는데 이는 “쓸모없게 된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요. 이처럼 우리 겨레는 예전에 뒤웅박을 곁에 두는 생활을 했습니다만 요즈음은 구경하기도 힘든 물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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