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얼레빗 4607호) 33인 중 유일한 옥중 순국 양한묵 지사

튼씩이 2021. 5. 26. 07:51

지금으로부터 102년 전인 1919년 오늘(5월 26일) 양한묵 애국지사가 서대문 감옥에서 향년 56살로 순국하였습니다. 양 지사는 3.1만세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으로 체포당한 뒤 심문하는 담당검사에게 '독립을 계획하는 것은 조선인의 의무'라고 당당히 밝히며 항일독립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양 지사는 이렇게 당당하였기에 가혹한 고문이 집중되었고,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유일하게 옥중순국 한 분이 된 것입니다.

 

 

 

▲ 33인 중 유일한 옥중 순국한 양한묵 지사(국가보훈처 제공)

 

 

양 지사는 1904년 일본에서 귀국한 뒤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반대하여 보안회를 설립하고 일진회를 타도하기 위해 설립된 공진회에 힘을 보태기도 했습니다. 또 1905년에는 헌정연구회를 창립하고, 호남의 교육발달을 목표로 1908년에 창립된 호남학회에서는 임시회장과 평의원으로 선임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힘을 쏟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1909년 12월 22일 이재명 등이 이완용을 암살하려다가 성공하지 못한 사건에 연루되어 약 4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지요.

 

 

양 지사는 또 천도교의 원로로서 천도교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천도교대헌을 기초하였으며, 《도경(道經)》ㆍ《무체법경(武體法經)》을 비롯한 다수의 교리서를 저술하는 한편 초기 천도교의 핵심간부로 교단을 운영하며 동학을 근대화하는데 매진하였습니다. 또한 교리강습을 통해 교인들에게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등 영향을 주었고 이 같은 노력이 3·1만세운동 당시 많은 천도교인들이 앞장서서 독립만세운동을 펼치는 토대를 이루었지요.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양한묵 지사의 반장(고향으로 옮겨 지내는 장례) 기사(<동아일보> 1922년 5월 5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