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에는 궁중과 양반이 즐기던 정악(正樂)과 백성이 즐기던 민속악(民俗樂)이 있지요. 다시 말하면 양반은 절제된 음악(정악)을 몸과 마음을 닦는 수단으로 썼고, 백성은 민속악을 삶의 한(恨)을 풀어내는 도구로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법은 바로 전통춤에도 적용됩니다.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지요. 말 그대로 궁중무용은 궁궐에서 추던 춤이고, 민속무용은 궁궐이 아닌 민가에서 즐긴 것입니다. 예를 들면 검무, 처용무, 포구락, 수연장, 봉래의, 학무 같은 것은 궁중무용이고, 민속무용에는 승무, 살풀이, 한량무, 강강술래, 탈춤 따위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민속무용이라 하더라도 탈춤 같은 몇 가지를 빼면 대부분 춤이 궁중무용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뜻을 담은 엄숙하면서도 화려한 태평무, 웅혼한 기상과 진취성을 띤 진쇠춤은 궁중무용에 많이 가깝습니다. 민속무용에서 많이 추는 승무와 살풀이도 궁중무용처럼 절제된,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형태를 띠지요. 그런 춤들은 움직이는 듯 멈추고 멈춘 듯 움직이는 모양새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춤은 흥겨움에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다가 신명이 정점에 다다르면 자신도 모르는 무아지경에 빠져 한순간 멈춥니다. 그런가 하면 어느새 다시 격렬한 움직임의 세계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정중동과 동중정이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은 춤동작의 형태와 형태가 이어지는 춤이 아니라 선과 선이 연결되는 춤이기 때문입니다.
정중동은 ‘겉으로는 숨 막힐 듯 조용한 가운데 속으로는 부단한 움직임’이 이어지며, 동중정은 ‘겉으로는 강렬하게 요동치는 듯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특히 무대예술로 승화된 대표적인 민속춤인 살풀이나 승무, 태평무 등에서 보면 두 장단이나 세 장단을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멈추어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렇게 정지된 상태에서 여백의 아름다움이 발산된 뒤 살풀이 수건이나 승무의 장삼이 용솟음하듯 몰아치는 모습을 보면, 끊임없이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우리 삶의 세계를 보는 듯합니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영향을 받은 교태 어린 춤을 추는 춤꾼들이 가끔 보이지만, 진짜 우리 춤은 절제미와 정중동의 표현이 아름다운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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