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스승의 가르침 10년, 어머니 배 속 교육보다 못해

튼씩이 2021. 12. 4. 10:34

스승의 가르침 10년, 어머니 배 속 교육보다 못해

 

 

사람이 처음 배 속에서 잉태되었을 때는 누구나 하늘로부터 똑같은 천품을 부여받지만, 배 속에서 열 달을 지내면서 사람의 좋고 나쁜 품성이 형성된다. 따라서 사람의 품성이 결정되는 처음 열 달의 태교가 출생 뒤의 교육보다 중요하다.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가 정조 24(1800)에 아기를 가진 여자들을 위해 한문으로 글을 짓고, 아들인 유희(柳僖)가 음의(音義)와 언해를 붙여 순조 1(1801)에 펴낸 태교신기(胎敎新記)에 나오는 말입니다. 태교신기는 모두 10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지언교자(只言敎字)자식의 기질적인 병은 부모로부터 연유한다로 시작하여 마지막 제10추언태교지본(推言胎敎之本)태교는 남편에게 책임이 있으니 부인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로 맺습니다. 이 책은 여성들에게 태교를 권장하기 위한 교육지침서로 일찍이 태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 이론과 실제를 체계적으로 정립했다는 데 그 뜻이 있지요. 또한 이 책은 언해본으로, 19세기 초 우리나라 한자음과 근대 국어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사주당은 출가하기 전부터 이미 호서 지방에서 군자다운 풍모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집이 가난한 탓에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가 22세 연상이면서 세 번이나 부인을 맞았던 유한규에게 시집을 갑니다. 사주당의 아들로 언문지(諺文志)를 비롯하여 100여 권의 책을 쓴 실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유희의 회고에 따르면, 남편인 유한규가 첫날밤 나의 어머니는 연세가 일흔 둘인데, 눈이 잘 안보이고 화를 잘 내시므로 모시기가 어려울 것이오라고 말하자 사주당은 세상에 옳지 않은 부모는 없다고 했습니다라며 시어머니를 극진히 모셨음은 물론 늘그막에 목천 현감이 된 남편이 청렴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범(女範)이라는 책에서 전해오기를 옛날의 현명한 여인이 임신을 하면 반드시 태교를 하여 몸가짐을 삼갔다 하는데 모든 책을 보아도 상세하게 전하질 않고 있어 고민 끝에 이 책을 지었다.

 

 

사주당은 이렇게 책을 쓴 뜻을 밝힙니다. 그녀는 또 태교를 이론으로만 다루지 않고 몸소 임신 중에 그대로 실천해보았다지요. 사주당은 평생 자식 교육을 제일의 관심사로 여겼는데 임종 직전 자신이 쓴 모든 책을 불태워 없애면서도 태교신기만은 집안의 여성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하여 남겨두었습니다. 사주당은 유교적 남녀관이 팽배하여 여성이 주체적인 삶을 살기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여성 지식인으로서 고군분투했지요. 그녀는 사임당 신씨나 음식디미방을 쓴 장계향에 견주어 결코 모자람이 없는 여성 군자입니다. 사주당이 태교신기를 통해 주장한 스승의 가르침 10년이 어머니의 배 속 교육 열 달만 못하다라는 말은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귀담아들을 내용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