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처음 들어온 축음기, 귀신소리 난다
요즘 세상에 음악 듣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공연장도 많고 시디플레이어는 물론 컴퓨터로도 즐기지요. 심지어 슬기전화(스마트폰)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음악 듣기가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판소리가 유행하는데 이때는 명창을 불러다 들을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다가 1860년대 독일 상인 오페르트를 통해서 ‘축음기(蓄音機)’라는 것이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축음기는 말 그대로 ‘소리를 쌓아두는 기계’인데 이를 처음 본 조선 관리는 ‘귀신소리 나는 기계’라고 했다지요.
명창 박춘재는 우리나라에 축음기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고종 황제 앞에서 축음기에 소리를 녹음해 즉석에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1887년에는 미국의 빅터 레코드사로 건너가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지요. 그 뒤 1930년대 대중가요가 크게 유행하자 덩달아 축음기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이때 축음기를 사려면 회사원이 몇 달치 월급을 모아야 가능했기에 축음기를 ‘방탕한 자의 사치품’이라 했지요. 심지어 축음기를 가진 총각에게는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부유한 사람 외에는 축음기가 없던 시절 판소리 명창 임방울은 외삼촌 김창환과 송만갑의 주선으로 동양극장에서 <춘향가> 가운데 “쑥대머리”를 불렀고, 이를 음반으로 취입하여 120만 장이 팔렸습니다. 지금도 100만 장을 팔기가 어렵다는데, 당시 정말 귀했던 축음기로만 들을 수 있었던 때 판소리 음반 120만 장 판매기록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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