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징분질욕’ 네 글자를 써서 곁에 붙여둔 강석덕

튼씩이 2021. 12. 6. 08:51

‘징분질욕’ 네 글자를 써서 곁에 붙여둔 강석덕

 

강석덕은 성품이 청렴하고 강개(慷慨)하고 고매(高邁)하며, 옛 것을 좋아하였다. 과부(寡婦)가 된 어미를 섬겨서 지극히 효도했으며, 배다른 형제(兄弟)를 대우하여 그 화목을 극진히 하였다. (……)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생각할 적엔 다스리는 방법이 매우 주밀(周密)했으며, 집에 있을 때는 좌우(左右)에 책을 두고는 향()불을 피우고 단정히 앉았으니, 고요하고 평안하여 영예를 구함이 없었다. 손수 징분질욕(懲忿窒慾)’이란 네 개의 큰 글자를 써서 좌석의 곁에 붙여두고, 손에서는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세조실록5(1459) 910일 기사에 나오는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13951459)의 졸기(卒記)입니다. ‘졸기란 죽은 인물에 대한 간결한 평을 담은 글이지요. 조선 초기의 유명화가 강희안(姜希顏)과 뛰어난 문인 강희맹(姜希孟) 형제의 아버지인 강석덕은 징분질욕(懲忿窒慾)’ 분노를 참고 사욕을 억제한다라는 좌우명을 지키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병이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러 아들에게 글을 읽게 하고는 이를 듣고 있었지요. 또 아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나이가 60세가 되었는데, 비록 공리(功利)는 다른 사람에게 미치지 못했지마는 일을 행하는 데 권모(權謀)와 사기(詐欺)가 없었으니, 스스로 반성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의 벼슬아치들에게 이런 강석덕을 본받으라 한다면 무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