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있는 이야기/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김영조)

정약용이 탄복한 청렴한 선비, 정범조

튼씩이 2021. 12. 10. 12:57

정약용이 탄복한 청렴한 선비, 정범조

 

정조 경신년(1800) 여름, 나는 법천에 갔는데 해좌공이 손을 붙잡으며 기쁘게 맞아주셨다. 그때 집안사람이 벽장의 시렁 안에서 종이 한 묶음을 꺼내 가지고 나가니, 공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찬찬히 살펴보니, 대체로 식량이 떨어진 지 며칠 된 형편이었다. 종이를 팔아 70전을 얻어서 쌀을 사고 말린 고기 한두 마리를 사서 손님들을 대접해주었는데, 그 종이는 비문(碑文)이나 비지(碑誌)를 청하는 자가 폐백으로 가져다준 것이었다. 그런데도 공은 태연한 모습이어서 깜짝 놀라 탄복하였다.

 

 

다산 정약용이 해좌 정범조(海左 丁範祖, 17231801)에게 채제공의 비문을 받으러 갔을 때의 일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정범조는 벼슬이 예문관 제학, 형조판서에 이르렀으며 정조가 나라를 다스리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인물입니다. 학문과 문장도 뛰어났지만 청렴하고 단아한 인품 때문에 더욱 추앙을 받았지요.

 

그 정범조는 식량이 떨어진 지 며칠이 될 정도로 살림 형편이 어려웠지만, 찾아온 손님에게 내색을 하지 않고 폐백으로 받은 종이마저 내다 팔아 대접했던 것입니다. 공자는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서 도에 어긋날까 걱정해야지 가난을 근심해서는 안 된다 君子憂道 不憂貧라고 강조했는데 정범조는 그런 교훈을 지킨 셈입니다. 그가 떠난 지 200년이 되는 요즈음 정범조 같은 선비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