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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레빗) 3409. 《훈민정음 상주본》 값어치 1조 원?, 민족정신으로 보아야

튼씩이 2016. 10. 20. 21:42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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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349(2016). 10. 20.



문화유산을 돈으로 따지는 것이야말로 선조의 예술혼을 더럽히는 것이고 천박한 일이겠지만 세간 사람들에게는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방송(KBS)의 교양 프로그램 가운데 묻혀있던 진품명품을 발굴해 배우는 즐거움과 깨닫는 기쁨을 얻게 한다는 “진품명품”은 20년 동안 인기를 유지하면서 지난 16일에 1069회를 기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싼 값어치로 얘기되는 것은 600억 원이 넘는다는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으며, 500억 원 대라는 국보 제87호 “신라 금관총 금관”이 있고, 300억 원 대를 오르내리는 국보 제79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국보 제68호 "상감청자운학문매병", 국보 제133호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따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최근 그 행방이 묘연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에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만 세 번 만났지만 1천억 원을 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상주본을 감춰둔 것으로 보이는 배익기 씨는 그 값어치가 1조 원은 된다며 그 10%인 1천억 원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고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는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도 보관상태가 더 좋다는 상주본의 값어치는 어쩌면 상상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우리 겨레 으뜸 보물인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혹시 다칠까 걱정입니다. 1940년 간송 전형필 선생은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을 비롯한 많은 우리 문화재를 자신의 온 재산을 다 바쳐 수집했습니다. 그래서 말년에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았지만 그는 문화재를 팔지 않았습니다. 간송 선생이 수집한 것은 돈이 아니라 민족정신이었던 것입니다.

옛 얼레빗 (2012-10-22)



2399. 정조임금, 아버지를 위한 제례악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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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2대 임금 정조(1752~1800)는 죽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애타게 그리워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위한 절 용주사를 세웠고, 화성을 쌓았지요. 거기에 더하여 아버지를 위한 제례악 “경모궁제례악(景慕宮祭禮樂)”도 만들었습니다. 이 악장은 1783년(정조 7)에 문신 이휘지(李徽之)가 만들었고, 뒤에 남공철(南公轍)이 고쳤지요. 이 음악들은 모두 종묘제례악인 <정대업 定大業>과 <보태평 保太平> 가운데에서 발췌하여 줄인 것들로 종묘제례악의 축소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776년(정조 즉위년) 9월에 김한기(金漢耆)와 정상순(鄭尙淳)을 악기도감제조로 삼아 경모궁악기조성청을 만들고 ≪악학궤범≫에 수록된 <정대업> 제도를 본떠 악기를 만듭니다. 그 때 완성된 악기는 편종·편경·축·어와 같은 아악기가 있는가 하면, 방향·당피리와 같은 당악기가 있고, 대금·아쟁·거문고·가야금·해금·아쟁·장구·태평소와 같은 향악기도 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모궁제례악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이후로는 연주되지 않았지요. 다만, 1930년대까지도 이왕직 아악부 아악사들의 교육과정으로 반드시 익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현재는 연주되지 않고, 국립국악원이 1975년에 만든 음반 <한국음악선집> 제4집에 이 음악이 수록되었을 뿐입니다. 정조임금이 아버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여 만들었던 “경모궁제례악” 다시 연주될 날을 고대해봅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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