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9

(얼레빗 제4750호) 매창 시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매창공원’

몇 해 동안이나 비바람 소리를 내었던가 여태껏 지녀온 작은 거문고 외로운 난새의 노랠랑 뜯지도 말자더니, 끝내 백두음 가락을 스스로 지어서 읊었거니 위 시는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 3대 여류시인의 하나로 불리는 매창(李梅窓, 1573-1610)이 지은 시 입니다. 매창은 천민 출신으로 뛰어난 시인이었던 유희경과 가슴 시린 사랑을 나눈 걸로 유명하지요. 매창은 지녀오던 거문고로 와 사이 고민하다가 을 지어서 노랠 부릅니다. 여기서 ‘난새의 노래’란 새장에 갇힌 새의 외로움을 노래하는 것이고, 백두음은 늙어가는 여인이 자신의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래입니다. 매창은 희경을 그리워하다가 그렇게 슬픔을 노래했습니다. ▲ 부안 매창공원에 있는 시비 매창은 열 살 되던 해 부안의 내로라하는 시인 묵객이 모두 모..

(얼레빗 제4729호) 다른 악기 소리를 포근히 감싸 안는 대아쟁

지난 7월 1일 한국양금협회(대표 윤은화) 주최의 ‘2022 한국양금축제’가 열렸습니다. 그때 윤은화 작곡의 ‘은하’를 양금으로 연주하는데 양금에 거문고, 피리와 대아쟁이 더해져 음악은 정말 풍성해졌습니다. 특히 대아쟁이 함께 하면서 '우주의 공허함', '별들의 대화'는 물론 '우주 속에 하나 되는 우리'를 잘 표현했다는 느낌을 받았지요. ▲ 지난 7월 1일 ‘2022 한국양금축제’ 때 등장한 대아쟁(오른쪽 두 번째) 여기서 우리에게 선보인 ‘대아쟁’은 가야금처럼 연주자의 앞쪽에 수평으로 뉘어 놓고 '활대'라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활처럼 생긴 것을 써서 줄과 수직 방향으로 활을 비비거나, 가끔 손가락으로 가야금처럼 뜯기도 하면서 연주하는 아쟁의 하나입니다. 여기서 대아쟁은 정악 연주에 쓰는 것으로 원래 ..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매화야 가지 꺾였다고 상심치 말아라 寒梅莫恨短枝嶊 나도 흘러흘러 바다를 건너 왔단다 我亦飄飄越海來 깨끗한 건 예로부터 꺾인 일 많았으니 皎潔從前多見折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춰두렴 只收香艶隱蒼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한시 「절매식호중(折梅植壺中, 매화가지 하나 꺾어 병에 꽃고)」입니다. 정온은 부사직(副司直)으로 있던 1614년 영창대군이 죽었을 때, 그의 처형이 부당하며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수(斬首)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지요. 그러자 광해군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정온은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말았습니다. 반정으로 인조가 보위에 오른 뒤 사자(使者)가 정온..

기생의 가냘픈 기다림을 노래한 가곡 <바람은>

바람은 자동치듯 불고 구진비는 붓듯이 온다 / 눈 정에 거룬 님을 오늘 밤에 서로 만나자 허고 / 판첩처서 맹서 받았더니 / 이 풍우 중에 제 어이 오리 / 진실로 오기 곧 오랑이면 연분인가 하노라. 여창가곡 우조 우락(羽樂) 의 가사입니다. 여창가곡 가운데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지요. 이 노래의 주인공은 아마도 기생인 듯한데 임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주인공은 “아무리 맹세하고 약속했지만 이 폭풍우 중에 과연 임이 올까?“라고 걱정하면서도 만일 온다면 우리는 진정 인연일 것이라며 가냘프게 노래합니다. 이 노래를 한 기생은 과연 그날 밤 꿈같은 만남을 이루었을까요? 가곡은 시조의 시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 노래로, 피리·젓대(대금)·가야금·거문고·해금의 관현악 반주와 함께하는 한..

거문고 명인 백아는 왜 거문고 줄을 끊었을까?

거문고 타던 백아는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는 종자기가 죽고 나자 세상이 텅 빈 듯하여 이제 다 끝났다 싶어서 허리춤의 단도를 꺼내어 거문고 다섯줄을 북북 끊어버리고 거문고 판은 팍팍 뽀개 아궁이의 활활 타는 불길 속에 처넣어 버리고 이렇게 물었겠지. ‘네 속이 시원하냐?’ / ‘그렇고말고.’ / ‘울고 싶으냐?’ / ‘울고 싶고말고.’ - 신호열·김명호 옮김, 『연암집』 연암 박지원(朴趾源)이 안의 현감으로 있을 때 한양 벗들의 안부를 묻는 편지 일부입니다. 특히 이덕무(李德懋)가 죽고 나서 백아처럼 홀로 남은 박제가(朴齊家)가 걱정이 되어 쓴 것입니다.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알아주는 친한 벗이 죽었을 때 백아(중국 춘추시대 거문고 명인)의 심정 같은 박제가의 심정을 박지원은 마치 곁에서 본 듯 절묘하..

(얼레빗 4501호) 쿵덕쿵덕 방아를 찧어 떡을 빚어볼까?

"백결 선생은 신라 때 남산 아랫마을에 살았던 사람이다. ‘백결’이란 이름은 가난하여 언제나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를 걸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지어 부른 이름이다. 백결 선생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늘 거문고로 마음을 달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섣달그믐께 이웃에서는 절구에 떡을 찧는 소리가 한창인데 백결 선생 집에서는 떡쌀이 없어 떡을 찧을 수가 없었다. 부인이 슬퍼하며 정월 초하루를 무엇으로 맞을 것인가 하고 한탄했다. 그러자 백결 선생은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내어 부인의 슬픔을 달래었다." 《삼국사기》 열전에 나오는 글입니다. ▲ 쿵덕쿵덕 맞공이질로 방아를 찧어보세(그림 이무성 작가) “쿵덕 쿵덕” 수확이 끝난 뒤거나 명절을 앞둔 때 가정에서는 곡식을 빻는 공이질 소리가 구성집니다. 이..

9월 29일 - 서정시인 김영랑이 숨겨둔 반전은 무엇일까요

검은 벽에 기대선 채로 해가 스무 번 바뀌었는데 내 기린(麒麟)은 영영 울지를 못한다. 그 가슴을 퉁 흔들고 간 노인의 손 지금 어느 끝없는 향연에 높이 앉았으려니 땅 우의 외론 기린이야 하마 잊어졌을라 바깥은 거친 들 이리떼만 몰려다니고 사람인 양 꾸민 잔나비떼들 쏘다니어 내 기..

(얼레빗 3819호) 정제된 아름다움, 거문고 산조를 들어볼까요?

한국문화편지 3819호 (2018년 05월 17일 발행) 정제된 아름다움, 거문고 산조를 들어볼까요?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19][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전통음악에는 민속 음악에 속하는 기악 독주곡 형태의 하나로 “산조(散調)”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조”는 장단의 틀 말고는 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