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3

(얼레빗 제4799호) 내 자식 대신 남의 자식 죽이면 안 돼

“듣자 하니 젖을 먹일 여종 학덕이가 태어난 지 서너 달 된 자기 아이를 버려두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하더구나. 이는 학덕의 아이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근사록(近思錄)》에서는 이러한 일을 두고 말하기를 ‘남의 자식 죽여서 자기 자식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라고 했다.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이와 같으니, 어쩌면 좋으냐. 서울 집에도 젖을 먹일 만한 여종이 있을 것이니…….” ▲ 《근사록(近思錄)》, 36.5×24.0cm, 국립대구박물관, "남의 자식 죽여서 자기 자식 살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위 내용은 퇴계가 손자 이안도에게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퇴계가 끔찍이 사랑했던 손자 이안도의 아들 곧 증손자는 어미의 젖을 먹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대신 젖을 먹여 ..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청백리 인정받자 사양한 조사수 소신은 천성이 본래 잔약하고 어리석어서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남들이 혹시 주는 것이 있으면 받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청렴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시어 탐관오리를 면한 것만으로도 만족한데 사실과 달리 넘치는 이름을 얻고 보니, 이는 신이 하늘을 속이는 죄를 받을 뿐만 아니라 깨끗한 정사(政事)를 지향하는 전하께도 혹 누가 될는지 두려우며 몸 둘 바를 몰라 저도 모르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흐릅니다. 청백리의 이름을 지워주소서. 이는 유배지나 다름없는 제주목사가 되어 갔다가 제주의 문제점을 소상히 적어 올린 뒤 제주도 방어문제로 노심초사하던 임금에게서 청백리로 인정받은 송강(松岡) 조사수(趙士秀, 1502∼1558년)가 한 말입니다. 이..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이조판서 오윤겸,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울다 조선 중기, 하루는 정사를 마치고 인조 임금과 신하들 사이에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이때 문신 오윤겸(吳允謙, 1559∼1636년)이 매우 취하여 임금 앞에 엎드려 울었지요. 이에 임금이 무슨 까닭인지 묻자 “나라가 망하려고 해서 웁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재차 임금이 왜 나라가 망하느냐고 물었고, 오윤겸은 “신이 사사로이 아는 사람을 처음 벼슬하는 사람으로 추천하였는데, 전하께서 누구냐고 물으셨을 때 사사로운 관계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낙점하셨습니다. 이에 전하께서 신과의 인연에 구애되어 바른 도리로 신하를 꾸짖지 않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오윤겸은 벼슬자리를 사사로이 줄 수가 없는데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임금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울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