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양살이 7

(얼레빗 제4992) 184년 전 오늘, 제주로 유배 간 추사 김정희

“국청(鞫廳, 조선 때, 역적 등의 중죄인을 신문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했던 관아)에서 가두어둔 죄인 김정희(金正喜)를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하도록 하라.“ 《헌종실록》 7권, 헌종 6년(1840년) 9월 4일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이로써 조선 후기 선비이자 금석학자, 문인화가, 서예가로 그 이름을 중국에까지 알렸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를 가게 됩니다. ▲ 제주 대정현의 추사가 위리안치되었던 집 여기서 ‘위리안치(圍籬安置)’란 죄인이 귀양살이하던 곳에서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합니다. 그는 탐관오리를 탄핵하다가, 임금과 신하 사이를 이간시킨다는 사유로 임금의 미움을 사서 추자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

(얼레빗 제4766호) 발신자ㆍ수신자 모르는 조선시대 청탁 편지

전경목이 쓰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펴낸 《옛 편지로 읽은 조선사람의 감정》에는 발신자와 수신자를 알 수 없는 편지 한 장이 있습니다. 원래 편지란 발신자와 수신자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글이지만, 이 편지의 끝에 보면 ‘누제(纍弟)가 이름을 쓰지 않은 체 머리를 조아려 아룁니다.’라고 썼습니다. ‘누제(纍弟)’는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죄인이기에 자신의 성이나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입니다. ▲ 한 유배자가 지인에게 보낸 간찰, 갑자년 12월 1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제공) 또 편지의 내용을 보면 귀양살이하는 사람이 지인에게 관찰사의 농락으로 유배지를 급하게 옮기게 되었다며, 하룻길을 갈 노비와 말을 빌려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죄수가 교도소에 있을 때나 이감하는..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추다 – 정온, 「절매식호중」 매화야 가지 꺾였다고 상심치 말아라 寒梅莫恨短枝嶊 나도 흘러흘러 바다를 건너 왔단다 我亦飄飄越海來 깨끗한 건 예로부터 꺾인 일 많았으니 皎潔從前多見折 고운 향기 거두어 이끼 속에 감춰두렴 只收香艶隱蒼苔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한시 「절매식호중(折梅植壺中, 매화가지 하나 꺾어 병에 꽃고)」입니다. 정온은 부사직(副司直)으로 있던 1614년 영창대군이 죽었을 때, 그의 처형이 부당하며 영창대군을 죽인 강화부사 정항(鄭沆)을 참수(斬首)해야 한다고 상소를 올렸지요. 그러자 광해군은 크게 분노했고, 결국 정온은 제주도의 대정현(大靜縣)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고 말았습니다. 반정으로 인조가 보위에 오른 뒤 사자(使者)가 정온..

6~7세 이후는 아버지가 양육했다

6~7세 이후는 아버지가 양육했다 “집에서 애 하나 똑바로 가르치지 못하고 뭐했어.” 어떤 가정에서 나오는 큰소리입니다. 아이가 문제를 일으키자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짜증을 낸 것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 젖은 아버지들은 보통 자식의 잘못이 마치 어머니만의 책임인 것처럼 나무랐습니다. 그럼 조선시대 아버지들도 그처럼 자녀 양육의 책임을 어머니에게만 맡겼을까요? 아이가 학업에 소홀하여 나무랐는데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일어나 나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동문 밖에 나갔다. 곧바로 종을 보내 불러오게 했는데 돌아온 뒤 사립문 밖에서 머뭇거리고 들어오지 않았다. (……) 묵재가 그 불손함을 꾸짖으며 친히 데리고 들어오면서 그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다섯 번 때렸다. 방에 들어오자 ..

(얼레빗 4574호) 조선시대, 6~7살 넘은 아이 아버지가 양육해

“아이가 학업에 소홀하여 나무랐는데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 잠시 후 일어나 나가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동문 밖에 나갔다. 곧바로 종을 보내 불러오게 했는데 돌아온 뒤 사립문 밖에서 머뭇거리고 들어오지 않았다. (중략) 묵재가 그 불손함을 꾸짖으며 친히 데리고 들어오면서 그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다섯 번 때렸다. 방에 들어오자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이에 손자가 엎드려 울었다.” ▲ 조선시대 아버지들은 자식 교육을 책임질 줄 알았다. (그림 이무성 작가) 위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문건(李文楗, 1494∼1547)이 쓴 《양아록(養兒錄)》에 나오는 글입니다. 이문건은 손자를 가르치며, 말을 듣지 않으면 매를 때렸습니다. 물론 지나친 감정의 체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때린 뒤 손자가 한참을 엎드려 ..

(얼레빗 4101호) 먹과 금니로 쓴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한국문화편지 4101호 (2019년 06월 17일 발행) 먹과 금니로 쓴 &lt;이광사 필적 원교법첩&gt;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01][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보물 제1677-2호 &lt;이광사 필적 원교법첩(李匡師 筆蹟 員嶠法帖)&gt;가 있습니다. &lt;이광사 필적 원교법첩&gt;은 18..

(얼레빗 4022호) 비문 309개를 완전히 익혔던 추사

한국문화편지 4022호 (2019년 02월 26일 발행) 비문 309개를 완전히 익혔던 추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2][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완당노인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 늙을 때까지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에 뜻을 두었고 24살에 북경에 다녀온 후부터는 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