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6

(얼레빗 제5071호) 영조 임금, 넘쳐흐르는 청계천 바닥을 파내다

‘준천(濬川)의 대책은 역시 모색하기 어려운 일이더니, 이제는 그 실마리를 알 수 있겠다. 이미 조그마한 책자를 하나 만들도록 명하여 《준천사실(濬川事實)》이라고 이름하였으니, 책이 완성된 뒤에는 서문을 지어 내리겠다. (가운데 줄임)’ 살펴보건대, 준천의 역사에 역민(役民)이 여러 십만 명이나 동원되고 경비(經費)도 십만여 전(錢)이나 소모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국가의 안위(安危)가 걸린 그만둘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인가? 위는 《영조실록》 95권, 영조 36년(1760)년 3월 16일 기록으로 청계천 준천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선후기가 되면서 한양은 상업도시로 발전하고 전국 각지에서 이주민이 몰리면서 거주지 부족 현상이 심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개천 주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집단 거주지를 형..

(얼레빗 제4940호) 조선시대 군사용 무술 교본 《무예도보통지》

1790년(정조 14년) 정조의 명으로 규장각 검서관인 실학자 이덕무, 박제가와 장용영 소속 장교이자 무인인 백동수 등이 군사의 무예훈련을 위하여 펴낸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가 있습니다. 이 책은 《무예통지》ㆍ《무예도보》ㆍ《무예보》라고도 하며, 임금의 명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여 《어제무예도보통지(御製武藝圖譜通志)》 또는 《어정무예도보통지(御定武藝圖譜通志)》라고도 불립니다. 목판본으로 4권 4책의 한문본에 1권의 언해본(한글 해석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부분은 서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무예도보통지를 만든 정조의 뜻이 실려있지요. 임진왜란 뒤 선조 때 곤봉(棍棒)ㆍ장창(長槍) 등 여섯 가지 기예를 다룬 《무예제보》가 편찬되었으며, 영조 때에는 여기에 죽장창(竹長槍)ㆍ예도(銳刀) 등 12기를 더하여 《무..

늦더위 속의 창덕궁 공부하기

지난 6월 말 회사 후배들과 함께 아침 일찍 창덕궁과 후원을 관람한 적이 있는데 마침 약 석 달쯤 지난 지난주 토요일에 우리 집안 화수회 회원들과 함께 창덕궁을 답사하는 기회가 있었다. 계절은 9월 중순인데도 덥다 늦여름 날씨 같다. 간간이 해가 나면 등이 뜨겁다. 그렇지만 다시 보는 창덕궁과 후원, 다시 보는 만큼 새롭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었다. ▲ 창덕궁 인정전(문화재청 제공) ▲ 인정전 내부 ▲ 창덕궁 여러 전각들 인정전 등 큰 전각이 즐비하지만, 대부분은 보았던 것이어서 대충 보고는, 이번에는 집안 아지매 누님들도 있고 해서 왕비의 거주공간인 대조전 구역으로 같이 들어가니 뒤편에 아름다운 계단식 정원과 함께 괴석이 두 개가 보인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소영주(小瀛洲)라 쓰여 있다. 작은 영주산이란..

(얼레빗 4264호) 선조의 얼, 고지도를 필사한 ‘최현길 선생’

“고인께서는 고지도 원본 위의 한자를 일필(一筆)로 똑같이 써 내려가기 위해 글씨 연습에 날마다 아침 2시간씩 3년을 투자하셨습니다. 고인께서 영인본으로 접한 고지도의 양은 1,000점을 넘었지만, 지병이 악화되어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생을 마감한 2007년 7월 31일까지 필사한 고지도는..

(얼레빗 4121호) 정조, 독서는 작가의 동산에서 거니는 것

한국문화편지 4121호 (2019년 07월 15일 발행) 정조, 독서는 작가의 동산에서 거니는 것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21][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나는 일찍이 '경전을 연구하고 옛날의 도를 배워서 성인(聖人)의 정밀하고도 미묘한 경지를 엿보고, 널리 인용하고 밝게 분별하여 아주 오랜 세..

(얼레빗 3941호) 글 읽는 소리와 베 짜는 소리, 이덕무 한시

한국문화편지 3941호 (2018년 11월 05일 발행) 글 읽는 소리와 베 짜는 소리, 이덕무 한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41][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紅葉埋行踪(홍엽매행종) 단풍잎이 발자국을 묻어 버렸으니 山家隨意訪(산가수의방) 산속 집을 마음 가는 대로 찾아가네. 書聲和織聲(서성화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