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역법 3

(얼레빗 제4911호) 군대에 대신 가는 아르바이트 ‘대립군’

지난 2017년 이란 이름의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영화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어린 ‘광해’(여진구)에게 조정을 나눈 ‘분조’를 맡기고 의주로 피란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임금 대신 의병을 모아 전쟁에 맞서기 위해 머나먼 강계로 떠난 광해와 분조 일행은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 사는 ‘대립군’들을 호위병으로 끌고 가다가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습니다. ▲ 영화 포스터, 폭스 인터내셔널 프러덕션 (코리아) 제공 그런데 《현종실록》 4년(1663년) 11월 27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얘기도 나옵니다. “영동 재해 지역 중에서도 강릉과 양양이 심합니다. 두 고을 기병이 지금 당번이오나 옷과 물품이 허술해 얼어 죽을까 염려됩니다. 그러니 번 서는 것을 한 달 감해 주고 쓰고 남은 군포로 ..

(얼레빗 제4859호) 김육, 백성의 삶 체험하고 대동법 외쳐

충청 감사 김육(金堉)이 보고를 올리기를, "선혜청(宣惠廳)의 대동법(大同法)은 실로 백성을 구제하는 데 절실합니다. 경기와 강원도에 이미 시행하였으니 본도(本道)에 무슨 행하기 어려울 리가 있겠습니까. (가운데 줄임) 지금 만약 시행하면 백성 한 사람도 괴롭히지 않고 번거롭게 호령도 하지 않으며 면포 1필과 쌀 2말 이외에 다시 징수하는 명목도 없을 것이니, 지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은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위는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1638년) 9월 27일의 기록입니다. 김육은 대동법의 시행이 백성을 구제하는 방편이면서 나라 재정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시책이라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지만, 효종을 설득하여 효종 2년에는..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주경야독 끝에 대동법을 관철한 김육 옛 역사는 보고 싶지가 않네 古史不欲觀 볼 때마다 눈물이 흐르는 걸 觀之每并淚 군자들은 반드시 고통을 당하고 君子必困厄 소인들은 득세한 자들이 많으니 小人多得志 성공할 즈음이면 문득 패망 싹트고 垂成敗忽萌 편안해질 듯하면 이미 위태함 따라오네 欲安危已至 삼대시대 이후로 오늘날까지 從來三代下 하루도 올바로 다스려진 적 없는데 不見一日治 백성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生民亦何罪 저 푸른 하늘 뜻 알 수가 없네 冥漠蒼天意 지난 일도 오히려 이러하거늘 旣往尙如此 하물며 오늘날의 일이겠는가 而況當時事 조선 중기 문신 잠곡(潛谷) 김육(金堉, 1580∼1658년)이 지은 「관사유감(觀史有感, 옛 역사를 보면)」입니다. 소인들이 권세와 명예와 부를 차지하고 군자는 늘 고통을 면치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