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 감사 김육(金堉)이 보고를 올리기를, "선혜청(宣惠廳)의 대동법(大同法)은 실로 백성을 구제하는 데 절실합니다. 경기와 강원도에 이미 시행하였으니 본도(本道)에 무슨 행하기 어려울 리가 있겠습니까. (가운데 줄임) 지금 만약 시행하면 백성 한 사람도 괴롭히지 않고 번거롭게 호령도 하지 않으며 면포 1필과 쌀 2말 이외에 다시 징수하는 명목도 없을 것이니, 지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은 이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위는 《인조실록》 37권, 인조 16년(1638년) 9월 27일의 기록입니다. 김육은 대동법의 시행이 백성을 구제하는 방편이면서 나라 재정확보에도 도움이 되는 시책이라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물론 처음에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지만, 효종을 설득하여 효종 2년에는 호서지방, 효종 9년(1658년)에는 호남지역에도 대동법이 시행되도록 했습니다. 그런 그가 죽자, 효종은 “어떻게 하면 국사를 담당하여 김육과 같이 확고하여 흔들리지 않는 사람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을 정도였지요. 직접 농사를 지은 경험으로 진정 백성을 위한 정책을 고집스럽게 펼쳤던 김육 같은 사람은 지금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김육의 삶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주경야독(晝耕夜讀)입니다. 1613년부터 1623년 인조반정 직전까지 경기도 가평의 잠곡에서 식구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백성들의 밑바닥 삶을 체험하게 됩니다. 자그마치 10년 동안을 말입니다. 처음에는 살 집이 없어 굴을 파고 헛가래를 얽어 살았고 낮에는 나무하고 저녁에는 송진으로 불을 밝혀 책을 읽었지요. 김육은 광해군 때 세상이 어려워지자, 몸을 숨겨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 그는 주경야독하던 생활을 통해 백성들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하였는데 1638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자 대동법(大同法)과 균역법의 시행을 건의하는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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