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문 5

(얼레빗 4676호) ‘남대문’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아니다

“지금의 남대문은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바꾼 이름이다. 숭례문의 ‘례’의 뜻은 ‘예의’라는 뜻이다. 일본은 식민지였던 우리나라를 당연히 낮춰부르고 싶었을 것이다. 숭례문은 일본인들이 남대문으로 강제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성문의 이름을 바꿔버린 것이다.” 한 블로그에 있는 글입니다. 사실일까요? 하지만 “남대문”이란 말은 일제가 붙인 이름이 아닙니다. ▲ “정남(正南)은 숭례문(崇禮門)이니 속칭 남대문”이라고 기록된 《태조실록》 5년(1396) 9월 24 내용(오른쪽), 선조가 유성룡에게 묻는 “경성(京城) 사람인가”라고 묻는 《선조실록》 30년(1597년) 1월 27일 기록 “정북(正北)은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은 홍화문(弘化門)이니..

(얼레빗 4347호) 성난 시민들 기름을 뿌려 전차(電車) 불태웠다

《고종실록》 36년(1899년) 5월 27일의 기록을 보면 “방금 들으니, 전차(電車)를 운행할 때 백성들 가운데 죽고 다친 사람이 많다고 하니, 매우 놀랍고 참혹하다.(아래 줄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 뒤에 별도의 설명을 달아두었는데 ”이달 17일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에서 전차 개통식을 하였는데, 26일 전차가 종로(鐘路) 거리를 질주할 때 다섯 살 난 아이를 치어 죽였다. 여러 사람이 격노하여 차체를 파괴하고 기름을 뿌려 불태워 버렸다. 또 전차가 전복되어 죽거나 다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래서 이런 조정의 명령이 있었다.”라고 설명을 붙여두었습니다. ▲ 1899년 도입 대한제국기를 달렸던 전차, 한국전력공사 전기박물관 제공 처음 전차를 운행할 때 그 속도가 겨우 시속 8km로 ..

(얼레빗 4297호) 돈의문 철거하고 목재는 205원에 팔아

1915년 3월 4일 매일신보는 “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의 조선총독부 기관지답지 않은 기사를 실었습니다. 서대문이라고도 불렸던 돈의문의 철거를 의인화해서 ‘영원히 사라질 서대문’을 안타까워했지요. 기사는 “나는 1421년(세종 3년) 팔도장정 30만 명의 손으로 탄생한 성..

10월 27일 - 남대문은 조선총독부가 붙인 이름일까요

조선이란 나라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먼저 한양성곽을 쌓고 성곽을 드나들 4대문과 4소문을 짓습니다. 이 문들은 태조 5년인 1396년 10월 26일(양력)에 완성했습니다. 조선 시대 한양의 성곽 가운데 4대문의 이름을 지은 정도전은 직접 방향을 가리키는 말인 동서남북 대신 음양오행에 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