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시강원 7

(얼레빗 제4740호)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할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때 세자를 가르친 것은 나중에 임금을 만들기 위한 영재교육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지요. 물론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하였습니다. 시강원 설립 목적은 유학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에게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사부는 물론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 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이하의 전임관료들이었는데 주로 문과 출신의 30~40대의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종6품 ..

세자의 교육 (5) - 예제를 중시하는 교육, 입학례

5. 예제를 중시하는 교육, 입학례 왕세자 교육에서는 예제 교육도 중요했다. 조선의 왕세자는 장차 국왕이 되어 국가전례를 주관해야 했으므로, 사전에 다양한 예제를 익혀 두어야 했다. 따라서 왕세자는 국왕이 참석하는 국가전례가 있으면 국왕을 수행하여 현장 학습을 실시했고, 중국의 사신이 오면 왕세자가 주인이 되어 손님을 접대하는 절차까지 있었다. 왕세자가 국가전례에 참석할 경우에는 세자시강원의 관리들도 왕세자 옆에 배석했는데, 왕세자가 복잡한 의식 절차를 잘 익히고 원만하게 처신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국왕이 주재하는 국가전례를 목격하는 것과는 별도로 왕세자가 직접 경험하는 통과의례도 있었다. 궁중에서 왕자가 성장하는 동안 많은 통과의례가 거행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을 거론하면 어린 왕자가 스승을 처음 ..

조선의 세자 - 세자의 탄생과 원자생활, 교육

2. 세자의 탄생과 원자생활 세자의 일생은 탄생에서 시작된다. 세자의 탄생을 위해 이미 지극한 정성을 들인 태교가 수행되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성군(聖君)이 되기를 원하는 바람 속에서 최고의 정성을 기울인 태교가 시도되었다. 조선초기부터 이와 관련하여 《태산요록(胎産要錄)》이 만들어졌고, 이후 《태산집요(胎産集要)》나 《태교신기(胎敎新記)》와 같은 기록이 저술되었다. 세자의 출산을 위해서도 조선의 왕실에서는 출산전담기관으로 비빈(妃嬪)을 위한 산실청(産室廳)과 후궁을 위한 호산청(護産廳)을 두었는데 산실청은 중전의 경우 3개월 전에 설치하며, 산실청 설치 기간에는 형벌 집행을 하지 않고 출산 후 7일째 되는 날 산실청을 폐지했다. 아직 세자가 되기 전 단계인 원자(元子)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보양청(輔養廳..

조선의 세자 - 세자란 누구인가

조선의 세자 정 재 훈 (경북대) 1. 세자란 누구인가 두루 알려져 있듯이 세자는 왕조시대 당대의 국왕을 이어서 다음 대의 국왕이 되는 후보자를 가리킨다. 세자를 가리키는 말은 동궁(東宮)ㆍ저궁(儲宮)ㆍ춘궁(春宮)ㆍ이극(貳極)ㆍ정윤(正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존칭어로는 저하(邸下)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세자를 가리키는 용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세자인데, 이 용어는 원래 고려 말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 태자가 격하되면서 쓰이게 된 것이다. 세자 또는 태자는 우리 역사에서 이미 삼국시대부터 존재하였다. 왕위의 부자세습이 결정되면서 자연스럽게 세자가 존재하게 되었고, 이후 대체로 장자로 결정되는 것이 관례였다. 고려 때의 〈훈요십조〉에서는 이를 규범화하기도 하였다. 즉, 적자(嫡子)에게 나..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속수례

스승의 가르침을 받기 위한 속수례 이 때에 와서 세자가 의위(儀衛)를 갖추고 요속(僚屬)을 거느리고 성균관에 이르러, 유복(儒服)을 입고 대성전(大成殿)에 들어와서 문선왕(文宣王)과 네 분의 배향위(配享位)에 제사를 지내고, …… 박사에게 속수례(束脩禮)를 행하고, 세자가 당(堂)에 올라 소학제사(小學題辭)를 강(講)하였다. 돌아와 신궁에 나아가서 잔치에 배석하였는데, 임금이 학관(學官)과 학생에게 음식을 주도록 명하였다. 『세종실록』 3년(1421년) 12월 25일 기록입니다. 조선시대 왕세자는 세자시강원 관원에게 수업을 받았습니다. 세자시강원은 왕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던 기관으로, 영의정이 책임을 맡았지요. 그때 성균관에서 열린 왕세자의 입학식은 나라의 큰 행사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제자가 가르침을 얻..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임금도 함부로 부르지 못한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세자는 나중에 임금이 되기 위한 영재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지요.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했습니다. 유학 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가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가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스승은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이하 전임관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문과 출신 30~40대 참상관(參上官, 정3품에서 ..

(얼레빗 4398호) 임금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신하 '불소지신'

조선시대 세자를 가르친 것은 나중에 임금을 만들기 위한 영재교육이었기에 세자를 가르치기 위한 별도의 기관을 두었습니다. 태조 때에는 그저 ‘세자관속(世子官屬)’이라 하여 관리만 두었는데 세조 때 드디어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을 설립하였습니다. 시강원 설립 목적은 유학교육을 통해서 미래의 임금인 세자에게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적 지식과 도덕적 자질을 기르기 위함이었지요. ▲ ‘세자시강원’에 걸어두었던 편액으로 효명세자의 예필(국립고궁박물관) 이때 세자를 가르치는 시강관들은 모두 당대의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습니다. 세자의 사부는 물론 가장 고위직인 영의정과 좌ㆍ우의정이 맡았지요. 하지만, 이들은 나랏일로 바빴기 때문에 실제로 세자를 가르치는 사람은 빈객(賓客) 등 전임관료들이었는데 주로 문과 출신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