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44

(얼레빗 4314호) 조선시대 백성의 집은 게딱지?

“상하 신하와 백성의 집에 정한 제도가 없어, 서민 집이 분수에 넘치게 관료 집을 따라가고 관료 저택은 감히 궁궐과도 비슷하다. 사치와 아름다움을 다투어 숭상하여 상하에 순서가 없게 되었으니, 실로 옳지 않은 일이다. 이제부터 친아들, 친형제와 공주는 50칸으로 하고, 대군은 여기..

(얼레빗 4246호) 흠경각 옥루, 천문ㆍ지리ㆍ인간의 조화 추구

“산 남쪽 기슭에는 높은 축대가 있어,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

(얼레빗 4180호) 신미대사가 훈민정음을 창제했다고?

지난 7월에 개봉된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아닌 중 신미(信眉)가 창제했다고 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신미가 아니라 세종 때 예문관대제학을 지내고 세종을 도와서 음악을 정비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는 난계(蘭溪) 박연(朴堧)이 창제했다고 주장하는 ..

5월 18일 - 겨레의 스승 세종대왕 넷, 명나라에 지성으로 사대했다?

《세종실록》에 보면 세종은 중국 황제가 죽었을 때 사흘만 입어도 되는 복을 스무이레 동안이나 입었습니다. 또 신하들의 반대에도 명나라의 요구에 응해 중요한 군수물자인 말 3만 마리를 보내고, 농사에 지장을 줄까봐 걱정하면서도 소 1만 마리를 보냈습니다. 신하들의 반대에 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