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45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6,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할말’과 ‘못할말’

‘할말’과 ‘못할말’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올라야 마땅한 낱말이다. 왜냐하면 우리 겨레가 오래도록 입말로 널리 썼을 뿐만 아니라, 말살이의 종요로운 가늠으로 여기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할말’과 ‘못할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다. 그것에 맞으면 ‘할말’이고, 어긋나면 ‘못할말’이다. ‘사람을 어우르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동아리를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얽히고설켜서 겨루고 다투고 싸우기 마련이다. 그런 겨룸과 다툼과 싸움에는 사랑과 미움이 또한 얽히고설키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서로 사랑하며 마음이 맞으면 모여서 어우러지고, 서로 미워하며 마음이 어긋나면 갈라서고 흩어진다. 이럴 때 사람의 한마디 말이 멀쩡하던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5,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파랗다’와 ‘푸르다’

· 파랗다 :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새싹과 같이 밝고 선명하게 푸르다.· 푸르다 : 맑은 가을 하늘이나 깊은 바다,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 《표준국어대사전》 ‘파랗다’와 ‘푸르다’가 헷갈린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924년에 나온 윤극영의 노래 은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하고 나간다. 이때 벌써 하늘을 ‘푸르다’라고 했다는 소리다. 그래서 《표준국어대사전》도 ‘파랗다’를 곧장 ‘푸르다’라고 풀이한 것이다. 또 ‘푸르다’는 ‘파랗다’를 풀이한 그 소리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고 있음을 알..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4,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참말’과 ‘거짓말’

나라 안에 온통 거짓말이 판을 치니까 거짓말을 다룬 책들이 춤추며 쏟아진다. 거짓말이란 무엇인가? 거짓말은 참말이 아닌 말이다. 참말과 거짓말은 서로 맞서는 짝이라, 참말은 거짓말이 아니고 거짓말은 참말이 아니다. 참말은 사람과 세상을 밝혀 주고 거짓말은 사람과 세상을 어둠으로 가리니, 거짓말을 잠재우는 것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지렛대다. ‘참말’과 ‘거짓말’이 가려지는 잣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있는 것(사실)’이다. ‘있는 것’과 맞으면 ‘참말’이고, ‘있는 것’과 어긋나면 ‘거짓말’이다. ‘있는 것’에는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도록 바깥세상에 나타나 있는 것도 있고,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도 있다. 바깥세상에 ‘있는 것’에도 저절로 그냥 있는 것도 있고, 사람이 만들어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3,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례’와 ‘뜨레’

누리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멈추지 않고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은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든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라 슬기와 설미(일의 갈래가 구별되는 어름)를 다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움직이며 바뀌는 모습을 알아보려고 만들어 낸 가늠이 ‘때’와 ‘적’이니, 한자말로 이른바 ‘시각’이다. 또한 그런 가늠으로 누리가 움직이며 바뀌는 사이의 길이를 나누어, ‘참’이며 ‘나절’이며 ‘날’이며 ‘달’이며 ‘해’며 하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한자말로 이른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때’와 ‘적’을 냇물이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흐른다고 느낀다. 그러면서 온갖 일이 그런 흐름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차례’는 이런 ‘때’와 ‘적’의 흐름에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2,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참다’와 ‘견디다’

‘참다’와 ‘견디다’도 요즘 아주 뜻가림을 못 하고 뒤죽박죽으로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다. 국어사전들도 두 낱말을 제대로 뜻가림하지 못한 채로 쓰기는 마찬가지다. 1) · 참다 : 마음을 눌러 견디다.· 견디다 : 어려움, 아픔 따위를 능히 참고 배기어 내다. 2) · 참다 : 어떤 생리적 현상이나 병적 상태를 애써 억누르고 견디어 내다.· 견디다 :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잘 참거나 배겨 내다. 3) · 참다 : 웃음, 울음, 아픔 따위를 억누르고 견디다.· 견디다 : 사람이나 생물이 일정한 기간 동안 어려운 환경에 굴복하거나 죽지 않고 계속해서 버티면서 살아 나가는 상태가 되다. 보다시피 ‘참다’는 ‘견디다’라고 풀이하고, ‘견디다’는 ‘참다’라고 풀이해 놓았다. 3)《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두 쪽 말을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1,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차다’와 ‘춥다’

우리처럼 해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철의 제맛을 알뜰하게 맛보며 살아가는 겨레는 땅덩이 위에서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위도에 자리 잡고 있어도 우리처럼 북쪽이 뭍으로 이어져 북극까지 열려 있고, 남쪽이 물로 이어져 적도까지 터져 있는 자리가 별로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은혜가 가없는 자연에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는 따스한 봄, 따가운 여름, 서늘한 가을, 차가운 겨울을 겪으면서 춥고 더운 느낌을 갖가지 낱말로 드러내며 살아간다. 말하자면, 바깥세상이 그지없이 베푸는 풍성한 잔치에서 우리는 갖가지 낱말로 알뜰하게 맞장구를 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의 잔치에 사람이 맞장구치는 낱말에서 가장 첫손 꼽을 것이 ‘차다’와 ‘춥다’, ‘뜨겁다’와 ‘덥다’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들 네 낱말..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50,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이랑’과 ‘고랑’

농사짓는 솜씨가 달라지고 농사마저 사라질 지경이 되니까 농사에 딸린 말도 더불어 달라지거나 사라지고 있다.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이 나오니까 극젱이(훌칭이), 쟁기, 써리, 고무래(곰배), 홀케, 도리깨가 모두 꼬리를 감추고, 따라서 따비와 보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사람 목숨의 바탕인 농사가 사라질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랑’과 ‘고랑’은 끝까지 살아남을 낱말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뜻을 가리지 못하게 되었고, 국어사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밭농사는 반드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밭의 흙을 갈아엎어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에 괭이로 흙을 파 올려 높아진 데와 낮아진 데가 나란하게 만든다. 흙을 파 올려 높아진 데는 비가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낮아..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49,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움’과 ‘싹’

가을이 되면 뫼와 들에 푸나무(풀과 나무)들이 겨울맞이에 바쁘다. 봄부터 키워 온 씨와 열매를 떨어뜨려 내보내고, 뿌리와 몸통에다 힘을 갈무리하느라 안간힘을 다한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봄여름 내내 쉬지 않고 일한 잎은 몫을 다했다고 기꺼이 시들어 떨어지고, 덕분에 사람들은 푸짐한 먹거리를 얻고 아름다운 단풍 구경에 마냥 즐겁다. 그리고 겨울이 오면 풀은 땅속에서 뿌리만으로, 나무는 땅 위에서 꾀벗은 몸통으로 추위와 싸우며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봄이 오면 푸나무는 또다시 ‘움’을 틔우고 ‘싹’을 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게 마련이다. · 움 : 풀이나 나무에 새로 돋아 나오는 싹.· 싹 : 씨, 줄기, 뿌리 따위에서 처음 돋아나는 어린잎이나 줄기.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8,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울’과 ‘담’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이렇게 비롯하는 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이야기하는 노래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막아 주는 노릇을 한다.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그림 이무성 작가)‘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아 놓은 가리개의 하나로, ‘바자’로 만드는 것과 ‘타리’로 만드는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바자’는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새끼줄로 엮거나 결어서 만..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47,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우리’와 ‘저희’

‘우리’라는 낱말은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대이름씨다. ‘여러 사람’에는 듣는 사람이 싸잡힐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대이름씨는 다른 겨레들이 두루 쓰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라는 대이름씨 낱말은 다른 대이름씨와 마찬가지로 매김씨로도 쓰인다. ‘우리 집, 우리 마을, 우리나라,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 아기, 우리 어머니……’ 이런 매김씨 또한 남다를 것이 별로 없는 쓰임새다. 그러나 외동도 서슴없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 하고, 마침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에 이르면 이런 매김씨야말로 참으로 남다르다. 그래서 안다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건 잘못 쓴 것이고 틀린 말이라는 사람까지 나왔다. 하지만 여기 쓰인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