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8

우당의 고종 망명 계획

《우당 이회영과 범정 장형의 발자취를 찾아서》를 보면 우당이 고종 망명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기다 고종이 갑자기 붕어하는 바람에 실패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래 이규설의 신한혁명단에서 1915년 고종 망명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였는데, 우당은 1918년 11월 자신의 아들 이규학이 고종의 조카딸과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삼아 고종의 망명을 다시 시도합니다. 신부례란 신부가 시집에 와서 처음으로 올리는 예식이라고 하는데, 우당은 신부례를 올리는 것을 기회로 고종과 접촉하여 망명을 타진하려고 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아들 이규학이 이미 3년 전에 고종의 조카딸과 결혼하였지만, 고종 망명을 추진하면서 이때 신부례를 추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종의 시종 이교영을 통하여 고종에게 망명을 타진하였고, 고..

(얼레빗 4635호) 고종에게 일본에 사죄하라 협박한 송병준

1907년 고종황제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여 을사조약과 일제 침략의 부당성을 폭로하고 호소한 직후인 그해 7월 6일 매국노 가운데 이완용과 쌍벽을 이루는 송병준은 고종에게 양위를 종용합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은 그 책임이 폐하에게 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친히 도쿄에 가서 일본의 천황에게 사죄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세가와 주둔군 사령관을 대한문 앞에 맞아 면박(面縛,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묶고 얼굴을 쳐들게 하여 사람에게 보임)의 예를 하십시오.”라고 협박했습니다. ▲ 사헌부 감찰시절의 송병준(출처 위키백과) 고종은 송병준에게 “경은 누구의 신하이냐”라고 책망했지만 이후 이완용과 송병준이 날마다 고종에게 독촉했고, 송병준이 만든 친일단체 일진회가 나서서 온 나라에서 ..

(얼레빗 4212호) 일본 아닌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상징한 독립문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는 중국사신을 접대하던 모화관의 정문인 영은문을 허물고 그 자리에 세운 사적 제32호 <독립문(獨立門)>이 있습니다. 1896년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이 조직한 독립협회 발의로 고종의 동의를 얻어 3,825원을 모금해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을 거행하고 이듬해 11..

(얼레빗 4123호) 매국노들에 의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

한국문화편지 4123호 (2019년 07월 17일 발행) 매국노들에 의한 고종황제 강제 퇴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2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07년 7월 16일 매국노들이 주도한 내각회의에서 마침내 황제 폐위가 결정되었고, 이를 안 고종은 ‘짐은 죽어도 양위할 수 없다.’고 거절하면서 버텼..

(얼레빗 3997호) 이완용을 개 취급한 노백린 장군 순국한 날

한국문화편지 3997호 (2019년 01월 22일 발행) 이완용을 개 취급한 노백린 장군 순국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97][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3년 전인 1926년 오늘(1월 22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총장을 지내고 독립군을 양성했으며, 미국에서 최초의 항일비행사 학교를 설립했던 노백..

11월 18일 - 끝까지 조선을 지키려던 한규설을 가두다

1905년 11월 17일 오후 을사늑약이 강행된 덕수궁 앞과 회의장 안은 완전무장한 일본군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기병 800명, 포병 5,000명, 보병 2만 명이 서울 시내 전역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하지요. ≪한말외교비화≫(1930)에 따르면 '슬피 부르짖는' 참정대신 한규설이 별실로 끌려 나..

8월 29일 - 경술국치의 현장, 총감관저 표석이 세워졌습니다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제국주의의 강요로 ‘병합조약’이 공포된 경술국치일입니다. 1910년 6월 30일 일본은 먼저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빼앗았습니다.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병합 후의 대한(對韓) 통치방침’을 마련해서 일본 내각회의에 제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한일병합 공..

(얼레빗 3893호) 1910년 오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날

한국문화편지 3893호 (2018년 08월 29일 발행) 1910년 오늘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치욕의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893][신한국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 황제 폐하와 일본국 황제 폐하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