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51

(얼레빗 제5086호) 조선시대, 나라에 변고가 생기면 하던 일들

임금이 명하여 단오의 영상시(迎祥詩, 나라에 기쁜 일이 있을 때 짓는 시)를 그치도록 하였다. 그때 단오가 가까워졌으므로 승정원에서 세규(歲規)에 의하여 제술관(製述官)을 뽑아서 아뢰고 대제학 주문신(主文臣)을 불러 운자(韻字)를 내어 과거에 문제 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하교하기를, "가뭄 피해가 이러하니, 이번에는 시문을 지어 올리지 말게 하라." 하였다. 위는 《숙종실록》 61권, 숙종 44년(1718년) 5월 1일 기록으로 숙종은 가뭄이 심하므로 과거를 열어 시문을 지어 올리지 않도록 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조선시대 임금은 이렇게 가뭄뿐만이 아니라 물난리가 나고 벼락이 치고, 돌림병이 도는 등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임금이 부덕하여 이런 재난이 생긴다고 하여 과거에서 시문을 짓는 것도 못 하게 하는 것..

「제주4·3기록물」ㆍ「산림녹화기록물」, 세계기록유산

10일 낮 11시 무렵(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21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4.2.~4.17. Executive Board)는 「제주4·3기록물」, 「산림녹화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 제221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 현장사진 「제주4·3기록물」은 제주 4.3으로 인한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대한 피해자 진술, 진상규명과 화해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사적으로 인권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제주도민들의 화해와 상생 정신을 통해 아픈 과거사를 해결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형무소에서 온 엽서 ▲ 특별법 서명 문서와 만년필 ▲ 진상조사보고서의 발간(왼쪽), 제주도의회 4·3피해신고서 ..

(얼레빗 제5027호) 석주명, 우리 나비에 우리말 이름 지어줘

역사 교사들이 한 컷의 사진으로 풀어낸 《한 컷 한국사(해냄에듀)》에 보면 “석주명, 우리 나비에 우리말 이름을 지어 주다”란 글이 있습니다. 석주명은 일본에서 농생물학을 배우고 돌아와 1913년부터 모교인 개성의 송도고등보통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면서 나비 연구에 전념한 분입니다. 선생은 방학 때 고향에 가는 학생들에게 나비 200마리씩 잡아 오라는 방학숙제를 냈고, 이래도 부족한 것은 직접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채집했다고 합니다. ▲ 나비 박사 석주명이 송도고등보통학교 과학실에서 나비 표본을 살피는 모습. 이때 이 학교의 과학실은 나비 표본이 대영박물관보다 많아 세계 으뜸으로 일컬어졌다.(출처, 《한 컷 한국사》) 그렇게 채집하고 관찰한 다음 서양과 일본학자들이 잘못 분류한 844종을 정리했으며, 선생..

(얼레빗 제4984호) 무궁화는 우리의 국화가 될 수 없다

지난 8월 12일 산림청은 “광복절 맞아 전국 곳곳 무궁화 축제 개최”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8월 18일까지 국립세종수목원, 수원시 영흥숲공원, 대전광역시 한밭수목원, 청주시 미동산수목원, 함평군 엑스포공원 등 온 나라 곳곳에서 다양한 품종의 무궁화를 전시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충청남도 태안군 천리포수목원은 무궁화 공예체험, 무궁화 OX퀴즈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제공하며 그동안 비공개됐던 무궁화품종보전원을 무료로 전면 개방한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경희대학교 법무대학원 강효백 교수는 그의 책 《두 얼굴의 무궁화》에서 “욱일기의 바탕인 무궁화, 우리 국화 될 수 없다.”라고 외칩니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 옛시조 3,355수 가운데 단 한 수라도 무궁화를 노래했더라면’, ‘약 4,965만 자의 ..

(얼레빗 제4971호) 쌀에 모래를 섞어 판 미곡상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으니 관계된 것이 매우 중합니다. 쌀의 품질이 세 가지가 있는데 각기 쓰이는 바는 달라도 모두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근래에는 인심이 교묘하게 속이기를 잘해서 오직 더 남겨 이익 취할 것만 도모하여 모든 쌀에 모래를 섞는데, 시전(市廛)이나 마을에서 거리낌 없이 통용합니다. 비록 날마다 금하여 다스리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여 중지하지 않으므로 만약 엄하게 금지 조항을 세우지 않는다면, 징계하여 단절시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명종실록》 26권, 명종 15년(1560) 7월 19일 치 기록으로 명종이 쌀에 모래를 섞어 파는 미곡상을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는 사헌부의 청에 그렇게 하라고 전교한 내용입니다. 현대에는 일반미를 인기가 좋은 경기미로 포장을 바꾸는 일이나, 중국산..

(얼레빗 제4955호) ‘장황‘을 버리고 ‘표구’를 써야만 하나?

지난 2022년 한 일간지는 “표구, 미술품 보존 기술 넘는 예술”이란 제목으로 《표구의 사회사》라는 책 서평을 실었습니다. 특히 기사에는 “표구(表具): 그림의 뒷면이나 테두리에 종이 또는 천을 발라서 꾸미는 일”이라는 내용이 있었지요. 그런데,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으로부터 ‘표구(表具)’라는 말을 수입해서 쓰는 바람에 비록 한자말이기는 하지만 조선시대 때 쓰던 ‘장황(粧䌙)’이란 말은 그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심지어는 《조선왕조실록》 원본에 ‘장황(粧䌙)’이라 쓰인 것을 국역한답시고 ‘표구’라고 했으니,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 서예작품을 장황하는 고 김표영 배첩장의 작업 모습(문화재청) 한국어와 일본어 비교에 정통한 이윤옥 박사에 따르면 “자존심 하나로 먹고사는 100년 전통을 가진 교토 야마기타..

《광해군일기》 – 묘호(廟號))를 못 받은 임금의 역사

▲ 《광해군일기》, 조선 1634년, 44.5×31.0cm, 국보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는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아래 《 실록》) 가운데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 시기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 사실을 연월로 기술하는 편찬 방법)로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1624년(인조 2)부터 편찬이 시작되었고, 1633년(인조 11) 중초본(中草本)’ 1부가, 이듬해 5월에 중초본을 검토하고 옮겨 쓴 정초본(正草本) 2부가 완성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일기》 중초본’은 태백산 사고(경북 봉화)에, 정초본 2부는 정족산 사고(강화도)와 적상산 사고(전북 무주)에 1부씩 봉안(奉安)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해군일기》는 적상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1책..

(얼레빗 제4890호) 대설 지나도 눈이 안 오면 기설제 지내

김광균 시인은 “설야(雪夜)”라는 시에서 눈이 오는 정경을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라고 읊조립니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12월 그것도 대설도 지났지만, 눈이 올 기미는 없고 오히려 어제는 곳곳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심지어 스키장에는 호우특보가 내리기도 해 편의점 앞에 비옷이 깔렸고, 스키장 운영자와 스키를 타러 갔던 사람들이 울상을 지었다고 합니다. “조강에 나아갔다. 임금이 이르기를, ‘요사이 보건대, 일기가 점점 온화해지고 또한 눈이 내리지 않는다. 기도하는 것을 꼭 숭상하여 믿을 수는 없지만, 기설제(祈雪祭)를 또한 지내야 하겠다. 겨울철에 비와 눈이 많이 와야 땅이 흠뻑 젖어, 내년 봄농사가 가망이 있는 법이다.’ 하였다.” 중종실록..

(얼레빗 제4887호) 세조와 이순신, 바둑을 좋아했다

“물거윤(勿巨尹) 이철(李徹)이 죽었다. (가운데 줄임) 철은 진을 치는 법에 밝고, 장기와 바둑[博奕ㆍ박혁]을 잘 두었으며, 젊어서 기병(奇兵)과 정병(正兵)을 도모(圖謀)하는 것에 능하여 눈에 들더니, 마침내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었고, 항상 대궐에서 거처하였다. 그가 죽자 염빈(주검에 수의를 입혀 관에 넣어 안치함) 하는 것을 곧바로 하지 말게 하였으니, 이것은 다시 살아나기를 바람에서였다.” 이는 《세조실록》 세조 13년(1467년) 2월 11일 기록입니다. 이를 보면 세조는 바둑을 무척 좋아했음이 드러납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바둑을 한자말로 ‘박혁(博奕)’ 또는 ‘기(碁)’라고 표현합니다. 그런가 하면 우수사, 충청수사, 장흥부사 등과 바둑을 두었다는 《난중일기》 기록으로 보아 이순신 장군도..

한층 친근해진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캐릭터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본부장 직무대리 신성희)는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과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캐릭터 4종(수문장, 종사관, 갑사, 대졸)을 새롭게 개발했다. * 수문장: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사대문인 흥인지문, 숭례문 등 도성과 궁궐의 문을 지키던 책임자 * 종사관: 수문장을 보좌하고 관청의 업무를 수행하던 관직 * 갑사(甲士) : 조선 전기의 직업군인으로 중앙군의 정예병 * 대졸(隊卒) : 조선 시대에 오위(五衛) 가운데 용양위에 속한 중앙군으로 광화문을 경비하던 병사 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은 조선시대 왕실 호위문화와 의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통문화 재현 행사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병전(兵典)」의 기록과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 궁중 문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