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명 4

항상 웃자

항상 웃자 거울을 쳐다보면서 입 양쪽 끝을 힘껏 위로 올리는 연습을 한다. 댄싱을 하거나 교회에서 대표 기도를 할 때도 웃음 띤 얼굴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하고 있다. 수십 년 전 어느 기도원 정문에 내걸린 표어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암은 병이 아니다. 낙심이 병이다. 웃읍시다. 하하하!" 내 좌우명의 첫 번째도 "항상 웃자"이다. "항상 웃자. 모두에게 감사하자. 바보가 되자." - 박태호의《혼자서도 고물고물 잘 놀자》중에서 - * 항상 웃자. 결코 쉽지 않습니다. 늘 웃을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다른 길이 없습니다. 웃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입술로만 웃지 말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밝고 환한 웃음, 그 웃음이 좋습니다. 그러면 얼굴의 주름살도 바뀝니다. '항상 웃는 얼굴..

판서를 부끄럽게 한 아전 김수팽

판서를 부끄럽게 한 아전 김수팽 조선시대 선비들은 청렴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특히 비가 새는 방안에서 일산(日傘)을 받친 채 “일산이 없는 집에서는 장마철을 어떻게 견디어 내나?”라고 했다는 유관(柳寬)은 조선조 청백리로 소문났지요. 이수광의 『조선의 방외지사』에 보면 청백리 벼슬아치 김수팽(金壽彭)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조선 영조 때 호조 아전을 지낸 김수팽은 청렴하고 강직해 ‘전설의 아전(衙前)’이라 불렸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습니다. 호조 창고에 나라 보물로 저장한 ‘금바둑알 은바둑알’ 수백만 개가 있었는데 판서가 한 개를 옷소매 속에 집어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김수팽이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묻자 판서는 “어린 손자에게 주려고 한다”라고 대답했지요. 이에 김수팽은 금바둑알 한 움큼을..

‘징분질욕’ 네 글자를 써서 곁에 붙여둔 강석덕

‘징분질욕’ 네 글자를 써서 곁에 붙여둔 강석덕 강석덕은 성품이 청렴하고 강개(慷慨)하고 고매(高邁)하며, 옛 것을 좋아하였다. 과부(寡婦)가 된 어미를 섬겨서 지극히 효도했으며, 배다른 형제(兄弟)를 대우하여 그 화목을 극진히 하였다. (……) 관직에 있으면서 일을 생각할 적엔 다스리는 방법이 매우 주밀(周密)했으며, 집에 있을 때는 좌우(左右)에 책을 두고는 향(香)불을 피우고 단정히 앉았으니, 고요하고 평안하여 영예를 구함이 없었다. 손수 ‘징분질욕(懲忿窒慾)’이란 네 개의 큰 글자를 써서 좌석의 곁에 붙여두고, 손에서는 책을 놓지 아니하였다. 『세조실록』 5년(1459년) 9월 10일 기사에 나오는 지돈령부사(知敦寧府事) 강석덕(姜碩德, 1395∼1459)의 졸기(卒記)입니다. ‘졸기’란 죽은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