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관 4

최초의 낭독자

잠시 시계를 돌려 103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19년, 서울은 고종 황제의 장례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종교 지도자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은 이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거국적인 민족 운동 예정일은 3월 1일 오후 2시로 잡혔다. 당일 정오 무렵부터 학생 수천 명과 사람들이 탑골 공원에 모였다. 그러나 약속 시간이 다 되어도 민족 대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인즉 이들은 전날 급하게 집결지를 인근의 요릿집 태화관으로 바꾸었다. ‘비폭력저항’을 대원칙으로 삼았기에, 인파와 일제 헌병 간의 유혈 사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이를 알지 못한 사람들은 불안으로 술렁였다. ‘혹시 민족 대표들이 잡혀갔나?’ ‘거사는 실패인가? 이대로 해산해야 할까?’ 이때 한 청년이 팔각정으로 뛰어올랐다...

(얼레빗 4041) 민족대표 중 가장 늦게 출소한 이승훈 선생

한국문화편지 4041호 (2019년 03월 25일 발행) 민족대표 중 가장 늦게 출소한 이승훈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41][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919년 3월 1일 낮 2시 태화관에서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29명의 민족대표들은 태극기에 경례를 한 다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 3창..

(얼레빗 4023호) 을사늑약 논의한 태화관서 3.1독립선언

한국문화편지 4023호 (2019년 02월 27일 발행) 을사늑약 논의한 태화관서 3.1독립선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3.1만세운동 100돌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 낮 2시 민족대표들은 조선음식점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