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어 17

단어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담긴 그릇, 현실 발음

[실라], [철리], [물랄리], [생산냥]. 한눈에 봐도 이상한 이 글자들은 한국어 단어인 ‘신라’, ‘천리’, ‘물난리’, ‘생산량’의 표준발음이다. 이렇게 한국어는 ‘표준 발음법’에 의해 올바른 발음이 정해져 있다. 안 그래도 외울 것이 많은 한국어 문법인데 발음까지 외워야 한다니. 누군가에게는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소식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표준 발음법에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규칙이 있지만, 이번 기사에서 다룰 것은 표준 발음법 제5장 제20항의 내용이다. 표준 발음법 제5장 제20항은 ‘ㄴ’은 ‘ㄹ’의 앞이나 뒤에서 [ㄹ]로 발음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신라’, ‘천리’, ‘물난리’의 ‘ㄴ’이 앞, 뒤의 ‘ㄹ’의 영향으로 ‘ㄹ’로 바뀌어 [실라], [철리], [..

어원을 찾아서 - 알고 보면 새내기 격의 우리말, ‘새내기’

3월이면 자주 쓰이는 우리말이 있다. 바로 대학이나 직장 등에 새로 갓 들어온 사람을 가리키는 ‘새내기’라는 말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곳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새내기’라는 말은 없었다. ‘새내기’는 1980년대 초반 대학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우리말 쓰기 운동’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새내기’라는 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1992년 이후부터이다. 1992년 4월 1일 자 동아일보에는 ‘최근 1, 2년 사이 서클을 동아리로 신입생을 새내기로 한글화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1)는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다. ‘우리말 쓰기 운동’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는 ‘새내기’ 외에도 다양하지만 ‘새내기’만큼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말은 많지 않다. ‘새내기..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사사와 사숙,같은 듯 다른 쓰임새

공자가 진나라를 지나갈 때 있었던 일이다. 공자는 진나라에 오기 전 어떤 사람에게서 구슬을 하나 얻었다. 그 구슬은 아주 진귀한 것으로 구슬 안에 아홉 번이나 굽이진 구멍이 있었다. 공자는 그 구멍에 실을 꿰어 보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어느 날 공자는 길옆에서 뽕잎을 따고 있는 아낙을 보고 묘수를 떠올렸다. ‘바느질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것이다. 아낙에게 방법을 물으니 ‘꿀을 생각해 보라’라는 말이 돌아왔다. 이에 공자는 개미 한 마리를 붙잡아 허리에 실을 묶고, 한쪽 구멍에 넣었다. 그 다음 구슬 다른 한쪽 구멍에 꿀을 바르고 기다렸다. 꿀 냄새를 맡은 개미는 곧 구멍 속으로 들어가 반대편 구멍으로 나왔다. 드디어 구슬을 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고사..

아 다르고 어 다른 우리말 - 승부와 승패, 같은 듯 다른 쓰임새

눈과 얼음의 스포츠 축제인 동계 올림픽이 한창이다. 올림픽은 참가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전 세계인들 앞에서 선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들이 펼치는 뜨거운 승부와 엇갈린 승패는 우리에게 잊을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승자의 숨길 수 없는 환호가 있는가 하면 패자의 쓰디쓴 눈물과 낙담이 있다. 이기고 지는 것이 분명한 스포츠 세계에서 올림픽만큼 참가 선수들의 희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승부와 승패, 이 두 단어는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닮았다. 많은 이들이 실제로 ‘승부’와 ‘승패’를 일상에서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단어는 완전히 같은 말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승부’는 ‘이김과 짐’으로, ‘승패’는 ‘승리와 패배를 아울러 이르는..

진달래와 개나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사람들이 느긋할 수 있는 까닭은, 곧 봄볕이 따스해지고 산과 들에 꽃이 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봄을 알리는 꽃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것이 진달래와 개나리라고 생각한다. ‘개나리’는 옛 차자 표기에서 ‘가히나리’란 형태로 나타난다. 500년 전까지만 해도 ‘개’를 ‘가히’라고 했기 때문에, ‘가히나리’가 ‘개나리’로 변화한 시기는 대개 16세기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개’가 접두사로 쓰여 파생어를 만들 때에는 ‘야생 상태’라든지 ‘질이 떨어진다’는 의미를 보태주게 된다. 꽃 중에서 백합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나리’인데, 여기에 ‘개-’를 붙여서 ‘개나리’라고 하면 ‘질이 떨어지는 나리’를 가리키게 된다. 여기에 반하여 백합은 따로 ‘진짜 나리’라는 뜻으로 ‘참..

사전 두 배로 즐기기 - “표준국어대사전”, 아는 만큼 보여요!

“사전”이라고 하면 흔히 모르는 단어의 뜻을 알고 싶을 때 찾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고 쉽게 풀이해 주는 것은 사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그러나 사전에 ‘단어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는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고 다양한 정보가 들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도 그러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책자로 처음 발간되었는데, 당시 국어학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많은 논의 끝에 사전에 담을 정보를 결정하였고, 그러한 만큼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발간 당시의 국어학 논의의 결과물들이 많이 담겨 있다. 또한 국가에서 발간하는 사전인 만큼 언어생활의 지침이 되는 어문 규범과 관련한 사항도 담고자 하였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사전이 담고 있는 원어나 뜻풀이, 용례 등..

단일어, 합성어, 파생어

앞선 글들에서 우리는 형태소, 단어, 어근, 접사의 개념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 개념을 바탕으로 하여 단어의 구조를 파악해 보고, 단어의 구조에 따라 분류된 단어의 종류를 가리키는 문법 용어를 알아보도록 한다. 우선 하나의 형태소가 바로 단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봄, 나라, 살며시’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처럼 단순한 구조의 단어를 ‘단일어 (單一語)’라 한다. 이에 반해 둘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된 단어를 ‘복합어(複合語)’라 하는데, 복합어는 다시 둘로 나뉜다. 먼저 어근과 어근이 결합하는 것을 ‘합성’이라 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를 ‘합성어(合成語)’라 한다. 그리고 어근과 접사가 결합하는 것을 ‘파생’이라 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단어를 ‘파생어(派生語)’라 한다. (1)은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