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 145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32,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부리나케’와 ‘불현듯이’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 덕분(?)으로 요즘 우리 겨레의 옛 삶이 뚜렷이 드러나면서 중국 사람뿐만 아니라, 온 천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고조선의 중심이었던 요하 가장자리에서 일어난 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하나로 손꼽혀 온 중국 황하 문명보다 오백 년에서 천 년이나 앞선 사실이 환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을 일으켜서 먹거리를 익히고, 그릇을 굽고, 청동기를 만들어 사냥과 농사를 바꾸는 일을 황하 언저리의 중원 사람들에게 가르쳤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이는 동이족인 염제 신농씨가 중국으로 불을 가져가 농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한갓 신화가 아님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겨레가 불을 쓰며 살아온 세월이 오래라 그런지, 우리말에는 불에 말미암은 낱말이 여럿이다. ‘부리나케’와 ‘불현듯이..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31,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부랴부랴’와 ‘부랴사랴’

“겨울 초입에서는 이른 추위가 닥쳐서 부랴부랴 김장들을 재촉하고…….”                                                                                            - 한수산, 《부초》 “부랴사랴 외부대신 집으로 달려가는 교자가 있었다.”                                                                                            - 유주현, 《대한제국》 ‘부랴부랴’와 ‘부랴사랴’는 생김새가 아주 닮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의 같은 뜻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두 낱말의 뜻풀이를 아주 같은 것으로 해 놓았다. · 부랴부랴 : 매우 급하게 서두르는 모양.· 부..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9,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밑’과 ‘아래’

‘위’의 반대말은 ‘아래’이기도 하고 ‘밑’이기도 하다. 그것은 ‘위’라는 낱말이 반대말 둘을 거느릴 만큼 속살이 넓고 두터운 한편, ‘밑’과 ‘아래’의 속뜻이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다. 이처럼 두 낱말의 속뜻이 서로 가까운 탓에 요즘에는 ‘밑’과 ‘아래’의 뜻을 헷갈려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심지어 국어사전에서도 헷갈린 풀이를 해 놓았다. · 밑 : 나이, 정도, 지위, 직위 따위가 적거나 낮음.¶과장은 부장보다 밑이다. 동생은 나보다 두 살 밑이다.아래 : 신분, 연령, 지위, 정도 따위에서 어떠한 것보다 낮은 쪽.¶그는 나보다 두 살 아래이다. 위로는 회장에서, 아래로는 평사원까지…….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7,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무섭다’와 ‘두렵다’

토박이말은 우리 겨레가 이 땅에 살아오면서 스스로 만들어 낸 마음의 집이다. 우리 몸에는 우리 겨레의 유전 정보가 들어 있듯이, 토박이말에는 마음 정보가 들어 있다. 몸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는 쉽사리 망가지지 않으나, 말에 들어 있는 마음 정보는 흔들리는 세상에 맡겨 두면 단박에 망가진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무섭게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고 가르치지 못했다. 흔들리는 세상을 타고 일본말이 밀려와 짓밟고 미국말이 들어와 휘저어 뒤죽박죽되었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오며 갈고닦아 마련한 겨레의 마음 정보를 온통 망가뜨린 셈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네 마음, 우리네 느낌과 생각과 뜻과 얼은 토박이말과 함께 뒤죽박죽되어 버린 것이다. 토박이말 ‘무섭다’와 ‘두렵다’의 쓰임새도 ..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20,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땅’과 ‘흙’

‘땅’과 ‘흙’을 가려 쓰지 못하고 헷갈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의 뜻을 가려서 이야기해 보라면 망설일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뜻은 잘 가려 쓸 수 있으면서 그것을 제대로 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아는 사람들이 이런 우리말을 버리고 남의 말을 뽐내며 즐겨 쓰느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다는 사람들이 가르치지 않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배우겠는가? 공부하고 글 읽어 안다는 사람들은 우리말 ‘땅’과 ‘흙’을 버리고 남의 말 ‘토지’니 ‘영토’니 ‘토양’이니, ‘대지’니 하는 것들을 빌어다 쓰면서 새로운 세상이라도 찾은 듯이 우쭐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똑똑하고 환하게 알고 있던 세상을 내버리고, 알 듯 모를 듯 어름어름한 세상으..

김수업의 우리말은 서럽다 19, 우리 토박이말의 속뜻 - ‘돕다’와 ‘거들다’

‘돕다’와 ‘거들다’ 같은 낱말도 요즘은 거의 뜻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여다보면 그 까닭을 알 만하다. · 돕다 : 남이 하는 일이 잘되도록 거들거나 힘을 보태다. · 거들다 : 남이 하는 일을 함께 하면서 돕다. 《표준국어대사전》 이러니 사람들이 ‘돕다’와 ‘거들다’를 뒤죽박죽 헷갈려 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치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도 ‘돕다’는 사람을 겨냥하여 쓰는 낱말이고, ‘거들다’는 일을 겨냥하여 쓰는 낱말이다. 앞을 못 보거나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을 돕고, 배고픔과 헐벗음에 허덕이는 사람을 돕고, 힘겨운 일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사람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