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5

생선장수도 유행을 따르다

생선장수도 유행을 따르다 조선시대 한복에도 유행이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의 저고리를 보면 조선초기인 1580년 청주 한씨의 덧저고리 길이는 무려 81cm나 되어 엉덩이까지 내려갔는데, 18세기 초 누비 삼회장저고리를 보면 42cm로 짧아집니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로 오면 극단적으로 짧아지지요. 1780년 청연군주의 문단 삼회장저고리는 19.5cm이며, 1900년대에 아주 짧아진 저고리는 길이가 12cm밖에 안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짧아진 저고리는 젖가슴이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은 물론 배래(한복의 옷소매 아래쪽 부분)도 붕어의 배처럼 불룩 나온 붕어배래가 아니라 폭이 좁고 곧은 직배래여서 혼자는 도저히 입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맵시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했던 것이 1930년대에 오면 다시 저..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따듯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재 윤두서의 그림들 해남 윤씨 문헌海南尹氏文獻 「공재공행장恭齋公行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해 마침 해일海溢이 일어 바닷가 고을은 모두 곡식이 떠내려가고 텅 빈 들판은 벌겋게 황톳물로 물들어 있었다. 백포白浦는 바다에 닿아 있었기 때문에 그 재해災害가 특히 극심하였다. 인심이 매우 흉흉하게 되어 조석 간에 어떻게 될지 불안한 지경이었다. 관청에서 비록 구제책을 쓰기는 했으나 역시 실제로는 별다른 혜택이 없었다. 이에 공재 윤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산의 나무를 베어내서 소금을 구워 살길을 찾도록 해주었습니다. 한 마을 수백 호의 주민이 그의 도움을 받아 떠돌아다니거나 굶어 죽는 일이 없게 되었지요. 윤두서는 단순히 곡식을 나누어주는 것으로 가난한 이들을 구하는 도..

(얼레빗 4612호) 스승과 제자의 사랑, 김홍도 그림 '서당'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는 조선후기 대표적인 도화서 화원으로, 한국적이고 운치 있는 멋진 작품을 그린 화가입니다. 그런가 하면 ‘씨름’, ‘무동’, ‘빨래터’, ‘점심’ 같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하고 사실적인 그림 곧 풍속화를 많이 그렸지요. 여기 '서당'이란 이름의 그림도 역시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당시 서당에서 공부할 때 일어난 재미난 풍경을 묘사한 것입니다. ▲ 스승과 제자의 사랑을 그린 김홍도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을 보면 가운데서 한 손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회초리가 훈장 옆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동몽선습》이나 《명심보감》을 외우지 못해 방금 종아리라도 맞은 모양입니다. 이를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은 웃음을 참지 못하..

(얼레빗 4599호) 번화한 도시의 모습을 담은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폭이 세로 113.6cm, 가로 49.1cm인 8폭 병풍 가 있습니다. 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성시(城市) 곧 조선의 한양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묘사한 작품인데 모두 8폭의 화면에 2,120명 정도의 인물과 300여 마리의 동물 그리고 각종 그릇과 건물, 도로 등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속화입니다. ▲ 작가 모름, , 비단에 색, 각 113.6×49.1cm, 국립중앙박물관 영ㆍ정조 시대에는 상공업이 발달함으로써 도시인들의 소비생활이 활발해졌고 저잣거리(시장)는 연희패 등의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쳐났습니다. 따라서 그림 속 가게들은 고급스러운 마감재와 실내장식이 돋보이고 그 안에 옷, 푸성귀(채소), 고기, 생선, 건어물 등의..

(얼레빗 4486호) 김홍도의 천재성에 날개를 달아준 강세황

우리는 조선시대 으뜸 화원으로 단원 김홍도(金弘道)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원은 풍속화를 독창적으로 담아낸 천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그런데 그가 그렇게 뛰어난 화원이 된 데에는 표암 강세황(姜世晃)의 공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단원이 7~8살 되던 무렵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표암은 그를 아끼며 글과 그림을 가르친 뒤 도화서에 천거하여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합니다. 심지어 표암은 호랑이 그림의 표준작이라 평가를 받는 등의 그림을 함께 그렸지요. 표암은 오른쪽 위에 ‘표암화송(豹菴畵松)’이라 적었고, 단원은 왼쪽 아래에 그가 40대 이전에 주로 사용하던 호 ‘사능(士能)’을 적어 놓았으며, 소나무는 표암이, 호랑이는 단원이 그렸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윗부분에 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