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연대 415

존버나이트

어느 기업이 청소년층을 주요 판매 대상으로 한다며 ‘존버나이트’라는 음료를 출시했다. 음료 깡통에는 “ZONVER KNIGHT”라고 쓰여 있다. 당연히 영어에는 없는 ‘존버’가 무엇일까 궁금했고, 찾아보니 ‘존나 버티기’를 줄여서 쓰는 청소년 은어였다. 존나 버티기라니! 그 기업에서는 제품명에 ‘피로와 피곤함으로부터 잘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의미를 익살스럽게 담았다고 발표했다. 언제부터 ‘존나’가 익살스러운 말이었던가. ‘존나 버티기’를 줄여 쓴 ‘존버’는 아무리 은어라고 해도 비속어이다. ‘존버’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 본디말인 비속어를 떠올리게 된다.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은어가 제품명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자유시장 체제에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인지하는 비속어를 제품..

군달

끼니 외에 먹는 필요 없는 군음식을 군것질이라 하는 것처럼, 쓸데없다는 뜻이 담긴 접두사 ‘군-’이 붙은 우리말은 매우 많다.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 군걱정이고, 노래 부를 때 원래 악보와는 아무 관계없이 곁들이는 가락은 군가락이 된다.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왔다가 그걸 이루지 못하면 ‘헛걸음’이 되지만, 아무 목적도 없이 공연히 왔다면 그건 ‘군걸음’이 된다. 없어도 좋을 쓸데없는 것을 군것이라 한다. 그래서 없어도 되는데 쓸데없이 있어서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군것지다’고 나타낸다. “군것지니까 따로 연락하지 마세요.”, “우리 회사에 군것진 사람은 없습니다.”처럼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관용구에 ‘군눈을 뜨다’는 말이 있다. “늘그막에 군눈을 떠 아내 속을 썩였다.”처..

개치네쒜

출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가장 두려운 것은 재채기이다.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철이 바뀔 때마다 재채기와 콧물을 달고 살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동안은 그저 민망할 뿐이었던 재채기가 코로나19 사태를 당하여 공포로 다가왔다. 좁은 찻간에서 코나 목구멍이 근질거리기 시작하면 식은땀이 난다. 마스크가 얼마간 공포의 방패 구실을 해주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말에서 재채기 소리를 나타내는 소리시늉말은 흔히 ‘에취’로 쓰인다. 옛날에도 역시 재채기는 민망한 생리 현상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감기 걸릴 기미를 나타내기도 했으므로, 슬기로운 우리 한아비들은 재채기 뒤에 민망함을 덮고 감기를 내쫓으려는 느낌씨를 덧붙였다. 그게 바로 ‘개치네쒜’이다. “에취, 개치네쒜! 이놈의 감기 제발 좀 달아나라.” 하고 ..

손가락방아

책상에 앉아 무언가 골똘한 생각에 잠길 때,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또,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형사가 범죄 용의자를 심문할 때도 손가락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손가락 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를 가리키는 순 우리말이 바로 ‘손가락방아’이다. 이 말은 주로 ‘찧다’라는 동사와 함께 ‘손가락방아를 찧다’, ‘손가락방아를 찧으며’처럼 사용한다. 손가락방아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손가락권총’이란 말도 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만 펴고 나머지 손가락은 오그려서 권총 모양으로 하는 손짓을 가리키는 말이다. 손가락권총을 하고 손가락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발사될 염려가 있으니, 그냥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리는 손가락방아로 범인을 심문하는 것인지..

다모토리

다모토리라고 하면 언뜻 듣기에는 일본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글학회에서 펴낸 에 실려 있는 순 우리말이다. 이 사전에는 다모토리를 “큰 잔으로 파는 소주, 또는 그런 술을 마시는 일”이라고 올려놓았는데, 국립국어원에서 구축하고 있는 에서는 다모토리가 주로 함경북도 지방에서 ‘선술’의 뜻으로 쓰이던 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는 큰 술잔으로 마시는 ‘대폿술’이 흔했다. 술을 별 안주 없이 큰 그릇에 따라 마시는 것을 ‘대포 한잔 한다’고 했고, 막걸리를 큰 잔에 담아 파는 술집을 대폿집이라고 했었다. 아마 북쪽 지방에서는 소주를 큰 잔에 담아 파는 집을 다모토릿집이라고 했던 것 같다. 일본의 전통적인 다찌노미나 이자카야처럼, 다모토릿집은 옛 시대에 우리 한아비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선술집이 아니었나 ..

가납사니, 가리사니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의 아주 어색하거나 거북한 느낌을 ‘간지럽다’고 표현할 수 있다. 억센 경상도 억양을 지닌 사람이 상냥한 서울 말씨를 어색하게 흉내 내서 말할 때, “귀가 간지러워 못 듣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끔 보면, 생뚱맞은 아재 개그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든지 하는, 주변 사람의 몸이나 마음을 잘 간지럽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낯간지러운 행동을 자주 하는 사람을 가리켜 ‘간지라기’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간지럽게 하는 사람을 간지라기라고 하는 것처럼, 언행에 따라 사람을 나타내는 말 가운데 ‘가납사니’라는 순 우리말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보면, 사람들이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자꾸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처럼 ..

2019년 우리말 사랑꾼

573돌 한글날, 우리말 사랑꾼 뽑아 - 전 국회의원 노회찬, 피치마켓 대표 함의영, 국방부 장관 정경두,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에서는 2019년 우리말 사랑꾼으로 전 국회의원 노회찬, 피치마켓 대표 함의영, 국방부 장관 정경두,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를 뽑았다. 노회찬 님은 오랜 세월 한자로 ‘국’이라고 표시하던 국회의원 보람(배지)을 한글로 바꾸는 일에 2004년부터 꾸준하게 애썼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법안도 발의했다. 2018년에는 국회에서 개헌을 추진할 때 “헌법을 알기 쉬운 우리말로 만들어야 한다”는 한글 단체의 활동에 힘을 보탰다. 평소에 정치 용어와 법률 용어를 쉬운 말로 사용하고 한글로 적자는 데에..

무거리

주변을 돌아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사람들의 위생 관념이 많이 나아진 것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 사용은 이제 필수적인 일상이 되었고, 가벼운 재채기나 기침을 하는 모습도 웬만해선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며칠 전에 어느 책에서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이 생긴 것은 코로나19의 무거리 중 하나이다.”는 글을 읽었는데, 오랜만에 만난 토박이말 ‘무거리’가 참 반가웠다. 우리 토박이말 무거리는 본디 ‘곡식을 빻아서 체로 가루를 걸러 내고 남은 찌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무거리 고춧가루라든가, 무거리 떡이란 말을 쓰는 어른들을 더러 만날 수 있다. 이 말의 쓰임이 좀 더 넓혀져서, 예부터 무거리라고 하면 ‘변변치 못해 한 축에 끼이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

모도리와 텡쇠

사람의 생김새나 어떤 일 처리가 빈틈이 없이 단단하고 굳셀 때, ‘야무지다’, ‘야무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빈틈없이 매우 야무진 사람을 나타내는 우리 토박이말이 ‘모도리’이다. 흔히 겉과 속이 단단하고 야무진 사람을 ‘차돌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때의 차돌은 모도리와 같은 뜻으로 쓰인 말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차돌은 생김새가 단단한 사람을, 모도리는 일처리를 야무지게 하는 사람을 주로 일컫는 말로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차돌이나 모도리와는 반대로, 겉으로는 무척 튼튼해 보이는데 속은 허약한 사람을 낮잡아서 우리 선조들은 ‘텡쇠’라 불렀다. 텡쇠는 아마도 ‘텅 빈 쇠’가 줄어들어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하고 여러 학자들이 추측하고 있다. 현대문명에서 ‘텅 빈 쇠’ 하면 곧바로 깡통이 떠..

투미하다

돌연히 세상을 등져 버린 서울시장의 자취 뒤에 미투(Me Too) 논란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비록 들온말이지만 처음부터 ‘미투하다’는 말이 낯설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언뜻 ‘투미하다’는 우리말이 떠올랐다. 어리석은데다가 둔하기까지 한 사람을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티미하다’고 하는 말의 표준말이 ‘투미하다’이다. 억눌리고 감추어 왔던 성 관련 피해 사실을 용기 있게 알려 여론의 도움을 받고자 하는 게 미투 운동인데, 아직은 투미한 사람들이 그 아픔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은 투미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처럼, 상대방이 자기 말을 잘 못 알아듣고 둔하게 반응할 때에 ‘투미하다’는 말을 쓸 수 있다. ‘투미하다’와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