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76

(얼레빗 제5054호) 선조, 사서오경을 우리말로 뒤치라 했다

"무릇 글을 풀어내는 것을 어떤 이들은 소소한 일이어서 꼭 관심을 둘 필요까지는 없다고 하지만 성현들의 하신 말씀이 ‘글 뜻을 알지 못하고서 정밀하고 자세한 내용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하였다. 지금 사서오경(四書五經)의 구결(口訣, 한문의 한 구절 끝에 다는 토)과 뒤침(번역)은 경이 정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경의 학문이 정밀하고 해박함은 세상에 드문 일이다. 사서와 오경(五經)의 구결과 뒤침을 경이 모두 자상하게 정해 놓았으니, 하나의 국(局)을 설치할 만하다.“ ▲ 《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년) 10월 10일 기록 원문 위는 《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년) 10월 10일에 있는 기록입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의 임금으로서 너무 많은 오명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입니..

우리 토박이말의 속살 10 - ‘말씀’

《표준국어대사전》은 '말씀'에다 "남의 말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와 "자기의 말을 낮추어 이르는 말”이라는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다. 그러면서 뒤쪽 풀이의 보기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었다. 《우리말큰사전》과 《조선말대사전》도 두 가지 풀이를 함께 달아 놓았지만, 뒤쪽 풀이를 《표준국어대사전》과는 달리 "상대방을 높이어 자기의 말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풀이의 보기는 역시 "말씀을 올리다."와 "말씀을 드리다."를 들어 놓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말씀'이란 '남의 말'일 적에는 높여 이르는 것이 되고, '자기 말'일 적에는 낮추어 이르는 것이 된다. 같은 '말씀'이라도 남이 쓰면 '높임말'이 되지만, 자기가 쓰면 '낮춤말'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한글서예」 국가무형유산 새 종목 지정 예고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한글서예」를 국가무형유산 새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 이번에 지정 예고되는 「한글서예」는 ‘우리 고유의 글자인 한글을 먹과 붓을 사용하여 글로 쓰는 행위와 그에 담긴 전통지식’을 포괄한다. 「한글서예」는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반포된 15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종이에 국한하지 않고 금석(金石), 섬유 등 다양한 재질의 매체에 한국인의 삶을 기록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전해져왔다.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한글로 쓴 문학작품의 필사본이나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편지글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었으며, 전통적인 판본체, 궁체 외에 개인화된 필체인 민체를 통해 다양한 서체와 필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판본체: 조선시대 중·후기까지 주로 인쇄를 목적으로 하는 판각본에 사용한 ..

(얼레빗 제5011호) 임금이 내린 교지와 편지도 한글로 썼다

지난 10월 9일은 578돌 한글날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가 세종임금이 만든 훈민정음이 조선시대 내내 ‘언문’이라 하여 푸대접받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임금이나 왕비 등이 한글 편지를 썼음은 물론 교지도 한글로 써서 사실상 한글은 많은 이가 쓰는 글자였습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인 선조 25년(1592년) 4월 13일 선조임금은 공식 문서인 교지에 언문을 썼지요. 교지를 쓴 때는 왜군이 7백여 척의 배를 앞세워 부산포로 쳐들어와 미처 전쟁 준비를 하지 못했던 조선은 왜군의 침략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속속들이 관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며 선조는 탄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선조실록》 25년 8월 19일 기록을 보면 “언서로 방을 많이 써서 송언신에게 보내어 민간을 알아듣게 타이르..

(얼레빗 제5010호) ‘학생들 문해력 부족’이라는 기사의 문제점

어제 578돌 한글날을 맞아 언론에는 “시발점'이라고 하니 학생들이 ‘왜 욕해요?’”라고 했다면서 학생들 문해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라는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578돌 한글날을 앞두고 전국 5천848명의 초ㆍ중ㆍ고 교원을 대상으로 벌인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를 두고 보도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언론이 아무 비판의식 없이 보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를 든 것들을 보면 위 시발점(始發點) 사례 말고도 "두발 자유화 토론을 하는데, 두발이 두 다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했다고 하더라”,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수도라는 말을 몰라 충격받았다” 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발점’ 대신 ‘시작점’, ‘두발’ 대신 ‘머리털’, ‘금일’..

(얼레빗 제5008호) ‘해외’가 아니라 ‘나라 밖’이라고 써야 해

미국, 중국, 프랑스같이 다른 나라를 말할 때 흔히 사람들은 ‘해외’라고 합니다.그러나 이는 일본말을 들여다 쓴 것입니다. 일본은 섬나라기 때문에 일본 밖은 무조건 바다 밖 곧 해외(海外)라고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노녘(북녘)이 큰 뭍(대륙)과 붙어 있어서 나라 밖으로 나가는데 무조건 바다로만 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해외가 아니고 ‘나라 밖’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못 쓰는 말로는 노랫말에 ‘동해바다’라고 돼 있는데 이는 ‘동쪽에 있는 바다 바다’라고 겹말을 쓰는 것입니다. 온 세상 으뜸글자라고 하는 한글을 창제한 한글날 578돌이 눈앞에 있지만 이렇게 버릇이 되어 잘못된 말인 줄 모르고 쓰는 대한민국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 일본은 ‘해외(海外)’여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나..

(얼레빗 제4972호) 언문을 ‘한글’이라고 부르게 한 주시경 선생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이 말은 말이 겨레의 정체성이요, 독립 번영의 연장이라는 뜻으로 110년 전인 1914년 오늘(7월 27일) 세상을 뜨신 한힌샘 주시경 선생(1876~1914)이 하신 말씀입니다. 평생 배달말(우리말)을 올곧게 사랑하고 실천하고 가르치신 주시경 선생은 우리 말글을 갈고 닦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암울한 시대에 국권을 회복하고 겨레의 ..

10월 9일 한글날, 태극기 달아야 할까?

세계 문자 가운데 유일하게 문자를 만든 사람과 글자의 원리까지 밝혀진 문자는 바로 우리나라의 ‘한글’이다. 10월 9일 한글날은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문자로 인정받는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정되었다. 한글은 독창성, 창의성과 우수성뿐만 아니라 옛 조선들의 삶과 정신이 깃들어 있어 후손들에게 더욱 의미가 있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후 480년이 되던 1926년에 조선연구회가 매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해 기념한 것이 시초가 됐다. 당시에는 한국이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 위축됐던 시기라 민족정신을 되살리고 북돋우기 위해 한글날을 제정했다고 알려졌다. 1928년에 주시경 박사가 ‘한글’이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이름을 바꿨고, 1945년부터 1..

(얼레빗 제4950호) 광화문 현판, 한글이어야 한다

며칠 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말 "세종대왕 동상이 앞에 있는데 그 뒤편에 보이는 한자로 쓰인 현판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한 말에 누리꾼 가운데는 “수도 서울 한복판 광화문 현판 한글로 바꿉시다.“라고 댓글을 단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들게 복원한 거 그냥 둬라, 한자로 쓰여있다 해서 한국 역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댓글을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 현재의 광화문 한자(복제품) 현판 여기서 반대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보면 유 장관의 뜻을 제대로 헤아려 볼 생각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한 것도 있어 보여서 안타까웠습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 달려있는 광화문 한자 현판은 세종 때의 원형도 아니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세종 때 ’원형‘을 모른 채 썼는데 그것도 훈련..

(얼레빗 제4945호) ‘세종탄신일 하례연’, 꽁꽁 문 닫고 해야하나

오늘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꼽히는 세종임금의 627돌 탄신일입니다. 세종임금은 한문에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성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을 창제해 우리 겨레가 뛰어난 문화를 영위할 수 있도록 한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종임금이 태어난 준수방에는 그 흔한 기념관 하나도 없고, 길가에 초라하게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는 작은 표지석 하나만이 달랑 서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세종임금 탄신일에는 늘 문화재청이 여주 세종대왕 무덤(영릉)에서 숭모제를 열고 있어서 저는 이때만 되면 그에 대해 탄식을 해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5월 14~15일 경복궁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세종 이도(李祹) 탄신 하례연’을 연다고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따라서 이를 취재하기 위해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