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09 - 풀떼기

튼씩이 2019. 2. 23. 14:25

'거북하다'라는 말에서 어간은 '거북'이고, 어미는 '하다'다. '몸이 찌뿌드하고 괴로워 움직임이 자연스럽거나 자유롭지 못하다'라는 것이 사전에 나오는 '거북하다'의 풀이다. 나는 '거북하다'라는 말이 '거북(龜)'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낱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아마도 거북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가 귀갑(龜甲)을 입고 있는 스스로를 상상했을 것이고, 그런 답답하고 불편한 상태를 거북과 같다는 뜻에서 '거북하다'고 말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죽다'라는 말에서 어간은 '죽'이고, 어미는 '다'다. '거북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나는 어간 '죽'이 음식으로 먹는 죽(粥)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해 본다. 어떤 일을 망치거나 실패했을 때 우리는 흔히 '죽을 쒔다'고 말한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일을 망치거나 실패한, 다시 말해 '죽을 쑨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음식의 세계에서 죽의 사촌이라고 할 만한 것으로는 풀떼기, 범벅, 밀푸러기, 당수, 미음 같은 것들이 있다. 범벅은 곡식 가루로 된풀처럼 쑨 것인데, 늙은 호박이나 콩, 팥(콩이나 팥을 생각하면 <웃찾사>에 나오던 박보드레라는 이름의 개그우먼이 저절로 떠오른다. 에구)을 넣는다. 밀푸러기는 국에 밀가루를 풀어 만든 음식이다. 당수는 지금은 거의 잊힌 전통 음식 가운데 하나로 쌀, 좁쌀, 보리, 녹두 같은 곡식을 물에 불려서 간 가루에 술을 조금 넣고 물을 부어 미음같이 쑨다는데, 먹어본 적이 없으니 그 맛을 짐작할 수가 없다. 미음은 주로 환자나 어린아이들이 먹는 음식인데, 언뜻 보면 토박이말 같지만 한자로 '米飮'이라고 쓴다. 따라서 쌀로 만드는 것, 마실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이 미음의 두 가지 조건인 것이다. 미음을 뜻하는 토박이말로 보미라는 예쁜 낱말이 있으니 바꿔 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보미와 비슷하게 어린아이에게 젖 대신 먹이는 묽은 죽은 암죽이라고 한다.


풀떼기 (명) 1. 잡곡의 가루로 풀처럼 쑨 죽.

                 2. 잡곡을 갈아 물을 짜내고 다른 잡곡을 넣어 쑨 음식. 범벅보다는 묽고 죽보다는 되다.


쓰임의 예 - 밀기울, 늙은 호박, 팥을 섞어 만든 풀떼기의 구수한 냄새는 똥예의 식욕을 돋우고 있다. (방영웅의 소설 <분례기>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보미 - 미음(米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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