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034 - 가랑이

튼씩이 2019. 5. 8. 09:10

"촉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힘겨운 일을 억지로 하면 도리어 해를 입는다는 뜻이다. 비슷한 뜻으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뱁새는 붉은머리오목눈이의 다른 이름인데, 뱁새나 촉새가 속담에 등장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체급(體級) 면에서 황새와 비교해 가장 경량급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트플라이급의 조그만 새들이 슈펴헤비급 황새를 흉내 내다 가랑이 찢어지는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몹시 가난한 살림살이를 가리켜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는 이유는 뭘까. 가랑이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옛날 보릿고개를 넘다 지친 가난한 사람들은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 송기죽을 끓여 먹었다. 곯던 배를 채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예외 없이 생기는 지독한 변비 때문에 똥구멍이 찢어질 만큼 힘을 주어야 겨우 변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할지언정 점잖은 체면에 똥구멍이라는 상스러운 말을 함부로 입에 올리기가 뭣했던 조상들이 똥구멍을 가랑이라는 말로 대신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한다.


사람의 몸을 가리키는 말 중에서 가랑이와 비슷한 어감의 말로 겨드랑이가 있다. 가랑이와 겨드랑이의 공통점은 두 부분이 갈라지거나 이어지는 곳이라는 것, 그리고 오목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식물의 가지나 줄기에서 잎이 붙은 부분의 위쪽을 잎겨드랑이 또는 잎아귀라고 한다. 겨드랑이와 아귀가 동의어라는 뜻이 되는데, 손아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귀는 사물의 갈라진 부분을 뜻하는 말이니 겨드랑이가 겨드랑이인 것도 그곳이 팔과 어깨가 갈라지는(또는 이어지는) 부분이기 때문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가랑이 (명) ① 하나의 몸에서 끝이 갈라져 두 갈래로 벌어진 부분


                 바지 따위에서 다리가 들어가도록 된 부분


쓰임의 예 - 그는 대불이의 어깨를 찍어 잡아 흔들며 발로 대불이의 가랑이를 떠서 넘어뜨리려고 하였다. (문순태의 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잎겨드랑이 - 식물의 가지나 줄기에서 잎이 붙은 부분의 위쪽. = 잎아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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