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45 – 말밑

튼씩이 2019. 9. 11. 08:23

지은이가 치른 대학입시의 마지막 관문은 면접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잔뜩 긴장해 교수님들 앞에 앉았는데 질문이 떨어졌다. “자네, 좌우명이 뭔가?” 그런 게 있을 턱이 없는 나는 순간 망설였다. 사실대로 없다고 말하면 점수를 깎일 것이 분명할 터,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시에 입으로도 나왔다. “‘오는 주먹은 받아쳐라’입니다.” 그때 교수님들의 반응이 미소였는지 조소였는지 아니면 실소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는 주먹은 받아쳐라’는 그 이후로 내 진짜 좌우명이 돼버렸다. 세상과 언제든 맞장을 뜰 준비가 돼 있다, 이런 뜻인데, 좌우명치곤 그럴듯하지 않은가. 대결(對決)이라는 뜻의 맞장은 맞짱으로 쓰는 경우도 있는데, 둘 다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북한에서는 맞장이 ‘마주쳐 만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좌우명(座右銘)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리 오른쪽에 새긴 것’인데 그 유래는 이렇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가 제(齊)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찾았다. 거기에는 신기한 그릇이 하나 있었는데, 밑에 구멍이 뚫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이 넘게 차면 밑구멍으로 물이 몽땅 새어나가 버렸다고 한다. 공자는 생전의 환공이 이 그릇을 책상 오른쪽에 두고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는 말을 듣고 제자들에게 “공부도 마찬가지다. 다 배웠다고 교만하면 반드시 화를 입게 마련”이라고 가르친 뒤 집으로 돌아가 똑같은 그릇을 만들어 책상 오른쪽에 두고 스스로를 가다듬는 징표로 삼았다고 한다. 좌우명이라는 말은 이런 말밑에서 생긴 것이다.


‘가득 참을 경계하는 술잔’이라는 뜻의 계영배(戒盈盃)도 환공의 그릇과 비슷한 술잔이다. 계영배를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조선시대의 도공 우명옥은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부와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스승에게 돌아와 참회하며 계영배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 후 이 술잔을 의주 상인 임상옥이 갖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의 교훈으로 욕심을 다스려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임상옥은 드라마 <상도(商道)>의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말밑 (명) 어떤 단어의 근원적인 형태. 또는 어떤 말이 생겨난 근원


쓰임의 예 – 어제 설의 말밑을 살펴보았는데 그에는 ‘삼가고 조심하는 날’, 즉 몸과 마음을 바짝 죄어 조심하고 가다듬어 새해를 시작하라는 뜻도 있었지요.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라는 이름의 다음 블로그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맞장 – 마주쳐 만나는 것.(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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