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55 – 쇠푼

튼씩이 2019. 9. 21. 11:50

중학교 때 생각을 하면 어느 반엘 가든 꼭 말자지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하나는 끼여 있었다. 그쯤만 돼도 정확한 쓰임새는 모르지만 어쨌든 연장이 크면 클수록 좋은 것이라는 귀동냥쯤은 다하고 있을 나이여서 남달리 큰 물건을 가진 친구를 시샘 반 놀림 반으로 그렇게 부르곤 했었던 것 같다. 말자지는 말이 달고 있는 것처럼 큰 자지라는 뜻이겠지만, ()과 관계없이 말(言語)만으로도 큰 자지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은 그 다음에 따라 붙는 이름씨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앞가지이기 때문에. 앞가지 -’이 붙은 말로는 말벌, 말개미, 말매미, 말잠자리, 말조개 같은 것들이 있다. 모두가 동류들 중에서는 큰 쪽에 속한다. 말승냥이는 늑대의 다른 이름인데, 승냥이보다 큰 종류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말벌이나 말개미가 왕벌, 왕개미로도 불린다는 사실은 앞가지 -’의 존재증명(알리바이의 반대 개념으로)이 될 수 있겠다.

 

-’처럼 크다는 뜻을 나타내는 앞가지로는 -’이 있다. 한길과 한글, 대전(大田)의 옛 이름인 한밭이 좋은 보기다. ‘-’에는 또 완전하다, 바르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한낮, 한밤중, 한가운데, 한복판에 붙은 -’이 그렇다. 복판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사물의 한가운데를 가리키는 것인데 거기에 또 -’이 붙어 가운데의 가운데에서도 또 가운데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한복판이라는 말이다.

 

말이나 소나 덩치로 따지자면 어금지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가지의 세상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은 크다는 뜻을 나타내는 반면에 -’는 작다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쇠푼도 그렇고 쇠고래, 쇠기러기도 고래나 기러기 무리 중에서 몸집이 작은 편에 속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는데, ‘-’-’를 비교해 보면 앞가지의 세상에는 소가 비빌 언덕이 없었던 모양이다.

 

 

쇠푼 (명) 얼마 안 되는 돈.

 

쓰임의 예 쇠푼 한 닢이라도 더 벌어서 돈궤를 무겁게 채우는 기쁨으로 무슨 장사를 해 본 일도 없이.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 - 그 다음에 따라붙는 이름씨가 크다는 것을 나타내는 앞가지(접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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