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가지 ‘알-’은 겉을 덮어 싼 것이나 딸린 것을 다 떨어버린 상태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가장 쉬운 보기로 알몸을 들 수 있다. 신동엽 시인의 시처럼 ‘모든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은’ 상태, 정진규 시인의 ‘알’ 시리즈(정진규 시인은 ‘몸’ 시리즈도 쓰고 있다)의 ‘알’이 말하는 ‘벌거벗은 존재의 핵심’이 앞가지 ‘알-’에 담겨 있는 의미다.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의 말에 따르면 정진규 시인의 ‘알’은 생명의 시작이나 성장을 뜻하는 시간적 의미와 함께 존재에 담긴 의미의 결정체(結晶體)를 상징하는 공간적 의미도 지닌다.
목욕을 시켰는지 목에 뽀얗게 분을 바른 아이가 하나, 사람의 알인 아이가 하나 해질 무렵 골목길 문간에 나앉아 터질 듯한 포도 알을 한 알씩 입에 따 넣고 있었다 한 알씩 포도라는 이름이 그의 입 안에서 맛있게 지워져 가고 있었다 지워져 간다는 것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정진규의 시 <포도를 먹는 아이-알 4> 전문)
여럿 가운데 가장 요긴한 것을 알짜라고 하고, 속이 꽉 차 충실한 상태를 ‘알차다’고 말한다. 알궁둥이는 벌거벗은 궁둥이, 알땅은 풀이나 나무가 없는 헐벗은 땅을 가리킨다.
앞가지 ‘실-’도 작다, 가늘다, 엷다는 뜻을 나타낸다. 실핏줄, 실파, 실고추, 실국수, 실버들, 실바람 같은 말들이 다 그런 경우다. 엷게 긴 안개는 실안개, 폭이 아주 좁은 골목은 실골목, 가늘게 뜬 눈은 실눈이라고 한다.
어린 무를 열무, 겨우 날기 시작한 새 새끼를 열쭝이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열-’은 어리고 작다는 뜻을 나타내는 앞가지이고, 옹달샘, 옹달우물, 옹달솥, 옹달시루의 ‘옹달-’은 뒤에 따라오는 샘, 우물, 솥, 시루 같은 것들이 작고 오목하다는 뜻을 가진 앞가지다. 보조개는 볼우물이라고도 하니까 작고 오목한 예쁜 보조개를 옹달보조개라고 부르는 것은 어떨까.
알짜 (명) ① 여럿 가운데 가장 중요하거나 휼륭한 물건.
② 실속이 있거나 표본이 되는 것.
쓰임의 예 ★ 오 서방은 송곳 하나 꽂을 땅이 없는 알짜 소작인이었다. (채만식의 소설 『소년은 자란다』에서)
★ 이 사람아, 힘세다는 게 어디 기운만을 말하는 겐가, 꾀가 있는 사람이 알짜 힘센 놈이란 말일세.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열쭝이 – 겨우 날기 시작한 새 새끼. 또는 겁이 많고 나약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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