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이나 <연개소문>같이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왕년의 드라마를 보면 막리지(莫離支)라는 벼슬이 자주 나온다. 막리지는 고구려에서 군사와 정치를 주관하던 으뜸 벼슬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이어서 연개소문은 막리지가 된 다음 스스로 막리지 앞에 큰 대(大) 자를 붙여 대막리지가 되었고, 연개소문이 죽은 뒤 연개소문의 두 아들 남생과 남건은 대막리지 앞에 또 클 태(太) 자를 붙인 태대막리지 자리를 놓고 물고 물리는 싸움을 벌이다 고구려의 망국을 자초하고 말았다. 으뜸 위에 큰 으뜸이 있고, 또 그 위에 더욱 큰 으뜸이 있는 형국이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막리지와 같은 뜻을 가진 마리기라는 낱말이 실려 있다. 막리지의 ‘막리’가 ‘마리’와 통하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마리’는 머리의 옛말이다. 신라의 왕칭이었던 마립간(麻立干)을 보자. 마립간의 ‘마립’은 마리(頭)나 마루(宗) 등과 같은 말밑(語源)에서 비롯된 말로 지극히 높은 곳이나 꼭대기(頂上)를 뜻한다고 한다. 몽골의 칭기즈칸 시대에 ‘칸(Khan)’은 임금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한자로는 가한(可汗), 한(汗) 또는 간(干)으로 표기된다. 마립간의 ‘간’을 ‘칸’, 즉 임금이라는 뜻으로 보면, 결국 마립간은 ‘지극히 높은 임금’이나 ‘왕중왕’이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막리지의 ‘막리’와 마립간의 ‘마립’은 모두 ‘마리’와 통하고, ‘마리’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우두머리의 말밑에 대해서는 ‘대가리 노릇을 하다’라는 뜻의 한자말 ‘위두(爲頭)’로 보는 견해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나는 ‘우두(牛頭))’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이동(牛耳洞) 할 때의 우이(牛耳)에는 쇠귀 말고 우두머리라는 뜻도 있는데, 그래서 ‘우이를 잡다’나 ‘쇠귀를 잡다’는 ‘어떤 모임이나 동맹의 우두머리가 되다’라는 뜻이 된다. 쇠귀를 잡는 것은 결국 쇠머리를 잡는 것과 매한가지니 ‘쇠머리 잡은 머리’라는 뜻에서 우두머리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우두머리 (명) ① 물건의 꼭대기.
②어떤 일이나 단체에서 으뜸인 사람.
쓰임의 예 ★ 숙부는 어려서부터 장난이 심하고, 특히 아이들을 모아 일을 꾸미는 데는 선수였다. 자신은 언제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면서 말이다. (최일남의 소설 『숙부는 늑대』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쇠귀를 잡다 – 어떤 모임이나 동맹의 우두머리가 되다. =우이(牛耳)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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