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으로 옥아 들어 곱은 물건을 고부랑이라고 하는데, 오그랑이와 고부랑이에 공통으로 붙는 ‘-랑이’는 오목한 부분을 뜻한다. ‘오목하다’의 반대말은 ‘볼록하다’인데, ‘볼록하다’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가 진보, 여유, 긍정 개방이라면 ‘오목하다’라는 말은 보수, 결핍, 부정, 폐쇄의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랑이’가 뒤에 붙은 말 가운데는 오그랑이처럼 착하고 바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을 지칭하는 것들이 많다. 사시랑이는 가늘고 약한 사람이나 물건 또는 간사한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킨다. 가늘고 약한 것과 간사한 것은 통하는 바가 별로 없는 듯한데 이상한 일이다. 사시랑이와 어감이 비슷한 사그랑이는 다 삭아서 못 쓰게 된 사람이나 물건을 뜻하는 말이다. 소견 없이 방정맞고 경솔한 사람은 새줄랑이, 자꾸 방정맞게 까부는 사람은 촐랑이, 속이 좁고 마음 씀씀이가 아주 인색한 사람은 노랑이라고 한다. 흔히 ‘노랭이’라고 알고 있지만 표준말은 ‘노랑이’다. 털빛깔이 노란 개도 노랑이라고 하고, 노랑이의 큰말이 누렁이인데, 노랑이와 누렁이는 말이 주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랑이’가 붙은 말들을 더 알아보자. 아지랑이나 호랑이처럼 잘 알려진 말들도 있지만 도랑이나 다랑이, 모지랑이처럼 무명(無名) 상태의 말들도 있다. 말들이 입이 있다면 다 같은 이름씨(명사)인데 무슨 무명이냐고 한마디씩 했을 것이다. 도랑이는 개의 살가죽에 생기는 옴 비슷한 피부병, 다랑이는 산골짜기 비탈진 곳에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좁고 긴 논배미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논배미도 낯익은 말은 아니다. 논두렁으로 둘러싸인 논 하나하나의 구역을 논배미라고 하는 것이다. 모지랑이는 오래 써서 끝이 닳아 떨어진 물건을 가리킨다. 모지랑비, 모지랑숟가락, 모지랑갈퀴 등으로 응용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모지랑마누라, 모지랑남편이라는 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별로 쓸모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다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운 그런 존재라는 뜻에서 말이다.
오그랑이 (명) ① 안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거나 주름이 잡힌 물건.
② 마음씨가 바르지 못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쓰임의 예 ★ 짜장 내 자신이 해망쩍고 자발없으며 투미해 야비다리 치기가 일쑤인 오그랑이 주제에 이 엄청난 클럽에 끼어들었다는 게 잘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의 쉼터>라는 이름의 인터넷 가페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사시랑이 – 가늘고 약한 사람이나 물건. 또는 간사한 사람이나 물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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