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75 – 싹수

튼씩이 2019. 10. 15. 20:00

‘퉁’ 자가 들어간 말 가운데는 정체가 불분명한 것들이 많다. 이를테면 짝퉁, 싹퉁바가지 같은 것들이다. 가짜 명품을 가리키는 짝퉁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만 안 나올 뿐 모든 국민의 공용어가 된 지 오래다. 짝퉁의 유래에 대해서는 가짜가 짜가→짝으로 변화해 ‘비하(卑下)’의 뜻을 가지는 뒷가지 ‘-퉁이’의 ‘-퉁’과 결합한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한 듯하다. 눈퉁이, 배퉁이, 젖퉁이 같은 것들이 ‘비하(卑下)’를 뜻하는 ‘-퉁이’가 붙은 말들이다. 짝퉁의 유사어로는 ‘오리지널’과 대비를 이루는 ‘가리지널’이 있다. 경상도 쪽에서는 짝퉁을 ‘짜가리’로 부르는데, 반대말은 ‘진까리’라고 한다. ‘짜랭’이나 ‘짜댕’은 짝퉁이 변형된 말, 그러니까 ‘짝퉁의 짝퉁’이라고 할 수 있는 말들이다. 짝퉁 중에서도 중국산 싸구려 물품을 지칭할 때 쓰는데, 예를 들자면 이렇다. “나 원 참, 새로 산 내 운동화가 알고 보니 짜랭이네.” “뭔데?” “아다디스.”


싹퉁바가지는 과거 인기 절정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주역이었던 박해미의 극중 별명이다. ‘싹퉁’만을 놓고 보자면 짝퉁과 마찬가지로 싸가지가 줄어든 ‘싹’과 ‘-퉁’의 결합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어사전에는 싸가지가 싹수의 방언이라고 돼 있다. 싸가지는 망아지나 송아지처럼 ‘싹’에 ‘-아지’가 붙어서 된 말로, 원래는 ‘작은 싹’이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윤문식의 단골 대사인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를 생각해 보면 ‘싸가지 없음’은 대체로 ‘예의나 버릇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싹퉁바가지는 싸가지가 없다는 뜻의 “싸가지가 바가지”라는 말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싸가지가 너무 바가지 힙합 바지 입고 나가지”, 래퍼 김진표의 <나는 싸가지가 바가지>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가지’로 절묘하게 각운을 맞춘 랩이다.



싹수 (명) 어떤 일이나 사람이 앞으로 잘될 것 같은 낌새나 징조.


쓰임의 예 ★ 국내 지원 세력이 이 꼴이니 이미 싹수가 틀렸더군. (송기숙의 소설 『암태도』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퉁이 – 눈퉁이, 배퉁이, 젖퉁이에서처럼 ‘비하(卑下)’의 뜻을 가지는 뒷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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