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게시판/우리말은 재미있다(장승욱)

176 – 퉁

튼씩이 2019. 10. 17. 08:09

이번에는 ‘퉁치다’의 정체를 캐보자. 다음은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신용불량자 빚 사회봉사로 퉁’/신한은행, 시간당 2만원씩 면제>. 여기에서 ‘퉁’은 분명히 ‘퉁치다’에서 나온 말이고, ‘퉁치다’는 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줄 것과 받을 것을 서로 에우다’라는 뜻의 ‘비기다(준말은 ’빅다‘)’나 ‘상쇄하다’, 또는 ‘쌤쌤(’쎔쎔‘으로 쓰기도 한다. 영어 단어 ’same’에서 비롯된 말이다)‘과 비슷한 뜻빛깔을 가진 말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쓰인다. “저번에 꿔간 돈 빨리 갚아라.” “돈은 없고 어떡하나… 이거 네가 탐내던 책인데 이걸로 퉁치자.”


잠깐 옆길로 새자면,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는 ‘비기다’의 풀이에서 ‘서로 에우다’는 ‘서로 에끼다’의 잘못이다. ‘상쇄하다’라는 뜻으로는 ‘에우다’가 아니라 ‘에끼다’가 맞는 말이다.


‘퉁치다’는 ‘퉁’과 ‘치다’가 합쳐져 된 말이다. ‘치다’에 있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때리다’라는 뜻일 수도 있고, ‘…로 인정하거나 가정하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전자라면 ‘퉁치다’의 퉁은 의성어 아니면 의태어가 된다. 그런데 앞에서 소개한 어찌씨 ‘퉁’의 뜻풀이 다섯 개 중에서 어떤 것을 ‘퉁 때리다’에 대입해도 ‘상쇄하다’와 비슷한 ‘퉁치다’라는 의미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후자는 어떨까. ‘퉁치다’가 ‘퉁으로 인정하거나 가정하다’라는 뜻이라면 그 ‘퉁’을 어떤 뜻으로 볼 것인지가 문제다. 앞에 적은 ‘퉁’의 풀이에 조금 융통성을 발휘하자면 당구공 두 개가 맞부딪치는 소리나 모양을 ‘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구공 두 개는 크기나 모양이 똑같다. 그렇다면 ‘퉁치다’는 이처럼 ‘두 사물을 비교하거나 맞대어 같은 상태라고 인정하거나 가정하다’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 아닐까 두루뭉수리로 짐작해 본다.



퉁 (부) ① 큰 북이나 속이 빈 나무통 따위를 두드려 울리는 소리.


           ② 발로 탄탄한 곳을 세게 굴러 울리는 소리.


           ③ 물방울이나 덩이 따위가 떨어지는 소리.


           ④ 대포 따위를 쏘아 울리는 소리.


           ⑤ 탄력이 있는 물건이 좀 무겁게 튀는 모양.


쓰임의 예 ★ 퉁, 황소의 이맛전을 내리치는 메 소리가 나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김원일의 소설 『노을』에서)


              ★ 마루에 병을 퉁 놓는 소리가 난다. (염상섭의 소설 『취우』에서)



이 말만은 꼭 갈무리하자


에끼다 – 서로 주고받을 물건이나 일 따위를 비겨 없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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